후삼국 통일 이후 고려는 성종 대에 이르러 나라의 기틀을 잡고 제도를 정비하면서 국가의 재정도 충실하게 되었고, 농업과 수공업 등 여러 사회 분야에서 생산력과 경제력이 증진되었다고 파악된다. 성종은 이러한 안정된 정치 ·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물품화폐의 유통 단계에서 벗어나 국가에서 주조하고 공인한 화폐를 유통하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기록에서 보이는 철전이다.
철전은 고려시대에 주조된 화폐이다. 고려 성종은 화폐와 관련한 기초 사업을 일찍부터 시작하여 화폐 유통의 기반으로 삼으려고 노력하였는데, 983년(성종 2) 10월에 주점을 설치하는 등의 조처가 바로 그것이다. 후대에 숙종이 동전을 주조하면서 취하였던 조처와도 매우 비슷한데, 주점 등의 설치는 화폐의 유통을 활성화하려는 조치였다고 이해할 수 있다. 즉 성종은 즉위 직후부터 약 13년 동안 화폐 유통의 기반을 닦았고, 철전을 주조하였으며, 기존의 물품화폐 유통을 금지하는 등 철전의 유통을 강력하게 관철하였다.
그러나 불과 6년 뒤인 1002년(목종 5) 7월에 목종은 풍속을 놀라게 하여 국가에 이익이 되지 못하고 백성의 원망을 일으킨다는 시중 한언공(韓彦恭)의 건의를 받아들여 다점(茶店) · 주점 · 식미점(食味店) 등에서만 화폐를 사용하고 백성들이 사사로이 교역하는 것은 종전처럼 할 것을 명령하여 결국 철전의 유통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였다.
출토된 고려시대의 철전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중 뒷면에 동국(東國)이라고 새겨진 건원중보(乾元重寶)가 성종조의 철전으로 추측된다. 출토된 철전 가운데 무늬가 없는 철전도 있지만, 이는 타조(打造)된 것으로 보여 성종 때 주조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고 양도 매우 적어 실제 유통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