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율보(栗甫). 할아버지는 최행(崔行)이고, 아버지는 최계창(崔繼昌)이며, 어머니는 이정경(李禎慶)의 딸이다.
1651년(효종 2)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정언(正言)·지평(持平)·장령(掌令)·집의(執義) 등을 거쳐 온성부사(穩城府使), 동부승지(同副承旨)·황해도관찰사·병조참지·충청도순무사·강원도관찰사·제주목사·대사헌·경기도관찰사·공조참판·대사간·개성유수·도승지·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등을 역임하였고, 좌찬성(左參贊)에 이르렀다.
그의 인물평은 “관직에 있으면서 법을 지키고 나라를 위해 진력하였으며, 또 청렴결백한 지조와 조용하고 겸손한 절개가 있었다. 세상의 논의가 분파됨에 있어서 옛 견해를 확고하게 지키고, 들떠 경박한 논의에 동요되지 않으니 사람들이 이를 훌륭하게 여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1686년(숙종 12)에 다시 도승지로 국왕의 부름을 받았으나, 이 때 그는 시의(時議: 당시의 정세에 대한 논의)가 빗나가고 인심이 편벽된 것을 보고 벼슬길에 나올 뜻이 없어서 스스로 병을 핑계하고 서울 근교에 나와 물러나 있었다.
이후 관직 제수가 있을 때마다 마다하였으나, 국가에 길흉의 큰 예의 의식이 있으면 도성 안에 들어와서 잠깐 예를 치렀다가 곧 물러가곤 하였다.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