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량(子亮). 할아버지는 충청도관찰사 최상익(崔商翼)이고, 아버지는 강원감사 최중태(崔重泰)이며, 어머니는 심약명(沈若溟)의 딸이다.
1705년(숙종 31) 유학으로 숙종의 세자에 대한 대리청정을 반대하는 연명상소에 가담하였고, 1722년(경종 2)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725년(영조 1) 가주서(假注書)·정언·사서(司書)를 역임하였으며, 이 해에는 동지사 김흥경(金興慶)을 수행하여 서장관으로 북경을 다녀 왔다.
이듬해 지평을 거쳐 1729년 지제교·지평이 되었다. 1732년에도 지평을 거쳐 이듬해 1734년 헌납·사간·동래부사를 역임하였으며, 재직시 임소(任所)에서 서거하였다.
동래부사 시절에 동래읍성을 쌓은 내력 및 성 축조를 위해 동원한 사람 수 등을 기록한 '내주축성비(萊州築城碑)'를 건립하였다. 왜의 사절을 맞아 예를 올리던 초량 객사(草梁客舍)를 중수하고, 1735년에 조정에 충렬사 별사의 철거를 건의하여, 이듬해 안락서원의 충렬사와 합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