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1월 1일부터 3월 14일까지 58회에 걸쳐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이열재(怡悅齋)라는 필명으로 연재·발표되었다.
서울의 개진여학교에 재학 중인 한영진은 재능과 미모를 겸비한 여자였다. 그러나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심한 구박을 받으며 성장하였기 때문에 명랑한 기분을 지닐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영진이 앓게 되자, 계모는 요양을 보내는 척하여 한영진을 호춘식(扈春植)이라는 색주가 주인에게 팔아먹는다.
나중에 그 흉계를 알게 된 한영진은 자살하려다가, 자신을 찾아 나선 유모에 의하여 구출되고, 그 집을 도망쳐서 오부인댁에 은신하게 된다. 거기에서 동경으로 유학가 있는 오부인의 아들 강학수를 통하여 여학교 때 자신을 아껴주던 일본인 여교사 하나타(花田春子)와 연락이 닿게 된다. 얼마 뒤 한영진은 하나타의 주선으로 일본에 유학하게 되고, 거기에서 만난 강학수와 사랑을 하게 된다.
어느 날 흉몽 때문에 급히 귀국한 강학수는 한영진을 찾으려고 행패를 부리는 호춘식 일당을 재판소로 넘기고, 한영진의 아버지에게 결혼 승낙을 얻은 뒤 동경으로 다시 돌아가며, 오부인은 그들의 성례(成禮)를 기다린다는 데에서 끝난다.
이 작품은 신교육 사상의 고취를 비롯한 개화사조 및 계몽성에 주제의 초점을 두고는 있으나, 계모형 소설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체로 후처를 거느리고 사는 남편은 천품이 무능하거나 마누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외처증(畏妻症) 인간으로 유형화되는 것이 계모형 고대소설이나 신소설의 보편적 특징이다. 또한 이러한 무능한 남편과는 반대로 반드시 간악한 후처가 배필로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영진의 아버지와 계모도 바로 이러한 유형이다.
이는 환경적인 여건을 비롯한 사건의 진전이 계모로 하여금 전처소생의 자식을 구박하지 않을 수 없는 필연성에 의거하게 하기보다는, 계모라면 덮어놓고 악독한 인간이고 간교를 써서 전처 자식을 못살게 군다는 통례적인 작자의 선입관이 그대로 작품에 작용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개화기의 진취적인 시대상을 반영하면서도 역시 이러한 전래적인 소설의 타성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던 예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