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12월부터 1935년 10월까지 ≪삼천리 三千里≫, 1938년 1월부터 4월까지≪삼천리문학 三千里文學≫, 그리고 1938년 10월부터 1939년 6월까지 다시 ≪삼천리≫에 발표되었다.
그 뒤 전영택(田榮澤)과 백철(白鐵)의 서(序), 정비석(鄭飛石)의 발문을 붙이고, 비평문 <조선근대소설고 朝鮮近代小說考> 등을 합하여 1956년에 신구문화사(新丘文化社)에서 ≪춘원연구≫라는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또한, 1976년삼중당(三中堂)에서 펴낸 ≪김동인전집≫ 7권 중 제6권에 다시 수록되었다. 이광수(李光洙)의 소설을 생애와 더불어 비평하여 설명한 인상비평적인 비평문이다.
전체 연재순서는 ① 서언(緖言), ② 춘원 이광수, ③ <어린 벗에게>와 <소년의 비애(悲哀)> 기타, ④ <무정 無情>과 <개척자 開拓者>, ⑤ 기미(己未) 전후, ⑥ <가실> 이하 단편, ⑦ 물어(物語 : 이야기)와 사화(史話)와 소설, ⑧ <허생전 許生傳>, ⑨ <일설 춘향전 一說春香傳>, ⑩ <재생 再生>, ⑪ <마의태자 麻衣太子>, ⑫ <무정>에서 <마의태자>까지, ⑬ 단종 전후 역사와 문헌, ⑭ 춘원의 <단종애사 端宗哀史>, ⑮ <흙> 등 총 15장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단행본으로 출간될 때 ⑤와 ⑥이 누락되었고, ⑬과 ⑭가 합쳐져서 ‘춘원의 단종애사’라는 항목으로 묶였다.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이광수의 소설을 <허생전>·<일설 춘향전>과 같은 물어와 <마의태자>·<단종애사>·<이순신>과 같은 사화, <무정>·<재생>·<군상 群像>·<흙>·<유정 有情> 등 소설의 세 가지로 나누고, 주로 <무정>·<단종애사>·<재생>·<흙>을 평설(評說)하는 데에 집중하였다.
<무정>에 대해서는 인물 성격의 불통일, 구조의 파탄, 민족애의 고조 등을 들어 비판하는 한편, 구어체 문장과 사실적인 인물·장면 묘사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재생>에서는 상편과 하편의 인물 성격의 불통일성, 신파 비극적 결구(結構), 합리적인 소설 진행의 결여 등을 들어 ‘인생(人生)을 보여주지 못한 소설’이라고 혹평하였다.
또한 <단종애사>에서도 사적인 고증의 결핍과 성격의 불통일, ‘사실(史實)의 재생’일 뿐이라는 역사소설 의식의 결여를 지적하였다. <흙>에서는 그것이 <무정>·<재생>의 재판일 뿐이라고 신랄하게 비평하였다.
이러한 김동인의 인상비평적인 평설이 비교적 정확한 측면도 있으나, <무정>에 등장하는 인물이 보여주는 내부적 갈등의 양상을 성격의 불통일이라고 매도한 점이라든지, <단종애사>의 원전 채용에 대한 근거 없는 오류지적 등, 그 허점도 많이 드러난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작품 분석의 오류 외에도, 반춘원적(反春園的)인 감정, 자기 우월적인 시점으로 일관된 전체적인 흐름에서 비평의 객관성이 상실되고 있다는 것도 ≪춘원연구≫의 한계이다.
그러나 한 작가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비평문이라는 점과 문학의 예속성을 벗어나려 한 점, 소설의 구조·성격 창조 등 문학의 미적 특질의 해명에 의하여 작품론과 작가론을 시도한 점 등은 그 비평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