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업 초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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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민공 임경업 영정
충민공 임경업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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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조선 중기의 무신 임경업(林慶業)의 초상.
이칭
이칭
충민공임경업영정
시도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임경업 초상(林慶業 肖像)
지정기관
충청북도
종목
충청북도 시도유형문화재(1995년 06월 30일 지정)
소재지
충북 충주시 살미면 구향골길 16-5 (세성리)
정의
조선 중기의 무신 임경업(林慶業)의 초상.
개설

1995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60㎝, 가로 90㎝. 임경업의 초상화는 17세기 초의 통상적인 조선 초상화들과 달리 전형적인 명나라 초상화풍이다. 교의자(交椅子)에 호피(虎皮)를 두르고 정면관(正面觀)의 자세를 취하였다. 교의자 뒤의 오른쪽 배경에 높은 향궤(香櫃)를 배설한 뒤 그 위에 사자 향로와 가요(哥窯) 화병을 놓은 다음 화병에 송죽매(松竹梅)의 세한삼우(歲寒三友)를 꽂은 것도 그렇다. 흉배는 대담한 추상적 서운문(瑞雲文) 중심으로 이루어진 명칭 미상의 독특한 형태인 점 등은 모두 17세기 조선 초상화와는 다른 명나라의 이국적인 풍격이다.

내용

임경업林慶業(1594~1646)은 조선중기 인조 때 무신으로, 호는 고송孤松이다. 충주 출생(평안도 개천 태생설도 있음)으로 알려져 있다. 광해군 10년(1618) 무과에 합격하였고 인조 대에 일어난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웠다. 그는 병자호란 때 쓰러진 비운의 명장으로 추앙되어 소설로 각색되기도 하였고, 무속의 신으로 신성화되었다.

『임충민공고적(林忠愍公故蹟)』에 의하면, 1640년 6월에 명나라 장수가 황제에게 임경업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하여 중국 화가를 보내서 초상화 2벌을 그린 다음 1벌은 가져가고 1벌은 그에게 주었다고 한다. 임경업의 초상화가 명나라 풍격을 보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사실에서 연유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현전하는 이 초상화는 18세기에 다시 그려진 조선 초상화로 추정된다.

전반적인 도상은 명나라 풍을 따르고 있지만, 화법의 일부가 조선 후기의 초상화법과 상통되는 점이 많다. 특히 오사모의 날개 무늬를 일일이 정세하게 묘사하여 착시를 일으킬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를 시도한 것이 그렇다. 더욱이 단령의 운보문(雲寶紋) 주변에 작은 장식 문양들을 복잡하게 첨가하여 장식 취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현전본을 기준으로 볼 때, 18세기 이후의 우리나라 초상화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특징이다.

얼굴은 3단계 정도의 농담 변화가 있는 갈색 필선으로 윤곽선과 주름선을 잡았다. 그 다음 배채법(背彩法)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호분(湖粉)을 섞은 약간 불투명한 살색을 엷게 칠하였다. 주름선 주변에 갈색으로 가볍게 선염(渲染)하여 명암을 표현하였다. 이마와 인중에는 얽은 자국과 작은 점까지 표현하였다. 눈의 동공은 중앙 부분을 짙게 칠하고 주변으로 가면서 엷게 풀어서 동그란 입체감을 표현하였다.

관복은 기본적으로 옷주름을 다소 생략하여 표현하되, 직선과 곡선을 적절히 혼합하여 알맞게 묘사한 다음 옷주름 주변을 가볍게 선염하였다. 관복의 운보문 문양은 약간 짙은 청색 필선으로 선묘(線描)한 뒤 단령(團領 : 깃을 둥글게 만든 공복) 전체를 청색으로 담채(淡彩)하였다.

이는 17세기 초의 초상화와도 다르고 18세기 후반과도 다른 것이다. 명나라 풍의 관복 표현법을 많이 따른 결과로 생각된다. 흉배의 채색은 조선 초상화와 달리 두터운 석채(石彩 : 진채)를 후채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물기가 있어 다소 얇은 느낌이 드는 채색으로 이루어 진 것도 명나라 풍을 따른 결과로 보인다.

호피는 갈색 담채의 필선으로 무늬를 꼼꼼하게 묘사한 뒤 바탕을 황색으로 묽게 담채하였다. 책상과 의답(椅踏)에는 회색으로 조각 장식과 문양을 선묘하였고, 삽금대(鈒金帶 :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금띠)와 향로, 화병에는 금분을 사용하였다. 금분의 질이 좋지 않았던지 색조가 다소 어둡고 탁한 편이다.

화면 우상변에는 단정한 해서체로 쓴 “충민공임장군유상(忠愍公林將軍遺像)”이라는 표제가 있다. 비단은 올이 굵고 도톰한 광폭 통견을 사용하였다. 전 폭에 걸쳐 비단이 꺾이고 박락된 데다가 때가 많이 타서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편이다. 특히 하반부는 퇴락이 다소 심한 편이다. 1984년 유리 액자로 개장하며 족자 상태의 원형을 잃었으며, 이때 훼손이 심한 부분을 조악하게 보채(補彩)하였다.

이 초상화와 도상이 동일한 것이 국립중앙박물관에 1벌 소장되어 있다. 박물관 본이 질적으로 보다 우수할 뿐만 아니라 향로와 화병 주변을 가볍게 우려서 공간감과 입체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등 18세기 후반 양식을 보다 많이 보여 준다. 그리고 보존 상태도 매우 좋은 편이다.

의의와 평가

임경업의 영정은 조선 중기에 명나라의 초상화 양식이 전래된 뒤 그것이 조선 후기에 이모되면서 부분적으로나마 조선식으로 변화되는 과정의 일단을 보여 주는 매우 독특한 초상화이다.

참고문헌

『한국의 초상화 : 역사 속의 인물과 조우하다』(문화재청 편, 눌와, 2007)
『한국의 초상화』(조선미, 열화당,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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