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통도사 삼화상 진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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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삼화상진영 중 나옹화상 혜근 진영
통도사삼화상진영 중 나옹화상 혜근 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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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 화승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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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세 화승의 초상화.
내용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영정(影幀). 3폭. 각 그림 모두 세로 147㎝, 가로 77㎝. 1990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대웅전 서쪽 편의 삼성각(三聖閣)에 모셔 놓고 조사 신앙(祖師信仰)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이 그림은, 통도사에 와서 법회(法會)를 열었던 지공(指空, ?∼1363))·나옹(懶翁, 1320-1376)·무학(無學,1327~1405) 등 의발(衣鉢 : 法服과 鉢盂)을 전해 주고 받아 법맥을 잇는 사자상승(師資相承 : 스승이 제자에게 학예를 이어 전함) 관계의 삼대 화상의 초상화이다.

고려 말기의 개혁파로 알려진 이들 삼대 화상은 조선시대까지도 신앙의 대상으로 받들어져 통도사를 비롯한 신륵사·회암사·불암사·선암사 등 여러 사찰에 영정이 봉안되었다.

1807년(순조 7, 嘉慶 12)인총(印摠)이 증명(證明)하고, 의윤(義允)이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린 이 삼화상도는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의 의좌상(倚坐像)이다. 한 폭의 화면에 각기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여 가운데에 지공, 왼쪽〔向右〕에 나옹, 오른쪽〔向左〕에 무학을 배치하였다.

원래 호승(胡僧)으로서 충숙왕 때 고려에 들어왔으며, 원(元)에 돌아가서는 법원사(法源寺)에 주석하며 많은 고려 승려들을 지도했다고 하는 지공화상의 영정은, 머리에 삼산형(三山形)의 금색 모자를 쓴 채 오른쪽을 향해 몸을 돌린 좌안칠분면상(左顔七分面像)이다.

큰 귀와 긴 수염을 한 얼굴 표정이 매우 인자하다. 가슴 앞으로 들어 올려 손등이 바깥쪽으로 드러난 왼손으로는 긴 자루에 술이 왼 어깨 뒤로 넘어간 불자(拂子 : 번뇌·장애를 물리치는 표지로 쓰이는 불구의 하나)를 잡고 있다. 무릎 위로 내려뜨린 오른손으로는 아홉 알의 굵은 염주를 들고 있다.

원나라에 들어가 지공에게 법을 이어받고 귀국 후에는 공민왕의 왕사(王師)가 되기도 하였던 나옹의 영정 역시 지공과 거의 같은 자세인 좌안칠분면상이다.

그러나 지공과는 달리 승형(僧形)의 민머리에 오른손은 의자의 팔걸이를 짚고 왼손으로는 주장자(拄杖子 : 선사들이 좌선할 때나 설법할 때에 가지는 지팡이)를 잡고 있다. 얼굴도 다소 둥글어져 원만상을 하고 있다.

공민왕 때 원에 들어가 지공과 나옹을 만나 법·율(法·律)을 받았으며, 조선 개국 초 태조 이성계의 왕사를 지냈던 무학의 진영은, 나옹의 영정과 가사(袈裟)를 착용하는 방법과 왼팔 부분의 가사 자락에 ‘天(천)’자가 쓰여 있는 것 외에 좌우를 바꾸어 놓은 듯 거의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다.

각기 화면 우측 상단에 ‘西天國慱達怛尊者指空大和尙(서천국박달달존자지공대화상)’, ‘高麗恭愍王師普濟尊者懶翁和尙(고려공민왕사보제존자나옹화상)’, ‘漢陽太祖師妙嚴尊者無學大和尙(한양태조사묘엄존자무학대화상)’이라고 쓰여 있는 이 삼화상도는 조성 연대가 확실하다.

뿐만 아니라 황갈색과 미색 바탕 처리, 주조색인 녹색과 홍색의 조화로 장중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을 주어 미적 감각이 뛰어난 작품이라 하겠다.

참고문헌

『통도사의 불화』(통도사성보박물관,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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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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