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영산회, 약사회, 극락회를 나타내야 하는 삼세불도 세 폭 가운데 약사불도는 도난당하여 현존하지 않으나 석가불도와 아미타불도 두 폭이 남아있다. 두 폭의 불화 높이는 각각 4미터가 넘으며 의겸의 화풍을 잘 보여주고 있다.
중앙에 자리한 석가불도는 키 모양 광배를 갖추고 오른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에 항마촉지인을 지은 석가불을 화면 상단에 큼직하게 그린 다음, 아래쪽에는 문수·보현 협시보살을 중심으로 한 6보살과 사천왕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그 위쪽 광배 좌우로는 가섭과 아난존자를 비롯한 10대 제자와 함께 8금강을 대칭으로 그려 넣었다.
오른쪽(향하여 왼쪽)에 봉안된 아미타불도 역시 석가불도와 거의 같은 구성을 보이고는 있으나 약간 달라진 존상의 배열을 보인다. 먼저 관음·세지보살을 위시한 아미타팔대보살을 본존인 아미타불 몸 광배 주위로 배열하고 좌우 하단에는 사천왕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머리 광배 좌우로는 2위의 타방불(他方佛)을 두고 그 바깥쪽으로 가섭과 아난존자 등 4대 제자와 6금강 및 용왕·용녀가 마치 호위하듯 그려져 있다.
두 그림 모두 세련된 필치로 각 존상의 얼굴 모습과 신체형태, 문양 등을 표현하고, 적색과 녹색 위주에 난색(暖色) 계열의 색채를 사용하여 전반적으로 온화한 느낌이다.
한편 두 불화 모두 화면 하단에 화기(畵記)가 잘 남아 있고 복장낭(腹藏囊)과 동경(銅鏡), 후령통(喉鈴筒), 다라니(陀羅尼) 등과 발원문(發願文)이 함께 발견되어 그림의 조성시기는 1730년이고, 조성화원은 의겸(義謙)을 책임화원(首畵員)으로 행종(幸宗), 채인(採仁), 일민(日敏), 덕민(德敏), 각천(覺天), 지원(智元), 정관(皛寬), 책활(策闊) 등이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갑사 석가여래삼세불도는 화기가 분명하고 복장유물이 함께 발견되어 조선 후기 불교회화의 경향 및 의겸 유파의 화풍 파악은 물론, 불화 복장의식 연구에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