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 현풍 석빙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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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현풍 석빙고 정측면
달성 현풍 석빙고 정측면
건축
유적
국가유산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에 있는 조선후기에 축조된 얼음 저장 창고. 석빙고.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달성 현풍 석빙고(達城 玄風 石氷庫)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80년 09월 16일 지정)
소재지
대구 달성군 현풍면 현풍동로 86 (상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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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에 있는 조선후기에 축조된 얼음 저장 창고. 석빙고.
내용

198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빙실(氷室) 길이 9m, 너비 5m, 높이 6m. 화강암으로 쌓아 만든 얼음창고로, 현풍천이 흐르는 천변(川邊) 북쪽에 위치해 있다. 남향을 하면서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지만, 출입구는 언덕을 바라보는 북쪽에 마련되어 있다.

출입구는 긴 돌을 다듬어 네모난 문틀을 만든 모습인데, 안쪽에는 바깥 공기를 막기 위해서 강돌로 뒷벽채움을 하였고, 바깥쪽에는 돌을 쌓고 점토로 다진 다음 흙을 쌓아 올려 마치 거대한 고분처럼 보인다. 천장과 벽에는 잘 다듬어진 돌로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4개를 틀어 올려 쌓았고, 홍예와 홍예 사이에는 길고 큰 돌을 얹었다. 얼음방인 빙실의 바닥에는 돌을 평평하게 깔았는데, 약간의 경사를 두었고 가운데부분에 배수구를 놓아서 바닥에 괸 물이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도록 하였다. 천장에는 얼음이 녹지 않도록 통풍을 고려한 환기 구멍을 2군데 설치하였는데, 바깥쪽에서 비가 스며들지 않도록 뚜껑을 덮었다. 이러한 축조 방식이나 시설은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석빙고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전형적인 양식이다.

이 석빙고의 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제시되었다가 1982년 11월에 석빙고의 주변을 보수할 때, ‘숭정기원후2경술11월(崇禎紀元後二庚戌十一月)’이라고 적힌 건성비(建城碑)가 발견되어, 1730년(영조 6)에 건립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석빙고는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지만 1738년에 건립된 경주 석빙고(보물, 1963년 지정), 1737년∼1740년에 조성된 안동 석빙고(보물, 1963년 지정), 1742년에 축조된 창녕 석빙고(보물, 1963년 지정)보다 앞서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석빙고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당시에는 석빙고가 마을마다 설치되지 않았는데도 그리 크지도 않은 마을에 석빙고가 축조된 주목할만한 사례이며, 원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한국의 탐구』―한국의 석조미술―(정영호,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문화재대관』6-보물 4-(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빙고제의 고찰 ; 석빙고 구조를 중심으로」(손영식,『학예지』4, 육군사관학교육군박물관, 1995)
「한국의 석빙고」(정영호,『고미술』1992년 봄호, 한국고미술협회, 1992)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김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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