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민속·인류
개념
당면한 공간과 시간의 양면에 걸친 현장.
목차
정의
당면한 공간과 시간의 양면에 걸친 현장.
내용

판은 현장이다. ‘바로 이 순간, 이 자리’라고 할 현장이다. 그것은 크게는 생(삶)을 포괄한 모든 인간 행위이며 사건의 현장이다.

지금 당장 인간이 행위하고 있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다. 일이 터지고 있는 마당 또는 장(場)이라고 일컬을 수도 있다. 달리는 시간적 함축성이 강한 계제(階梯 : 순서나 절차), 계기란 말로 대체될 수도 있다.

사건과 행위는 인간 생의 과정, 역사의 경과를 비롯해서 일상 생활의 영위(營爲)며 경영 그리고 놀이까지를 포괄하지만 예능과 관련되어서는 흥행이며 공연 등 연희도 포함한다.

살판이라고 하는 경우, 놀음판·놀이판·씨름판이라고 하는 경우들이 이들 보기로 제시될 수 있다. 그러나 판의 행위며 사건은 범속하거나 타성에 젖어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베제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 또는 보나마나한 것 등이 일어난 현장을 판이란 이름으로는 잘 불러지지 않고 있다. 무슨 ‘거리’가 될 만한 것으로 규정될 만한 행위라야 판의 행위다.

이 때, 사건성이라 말로 ‘거리’를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났다’, ‘야단났다’고 할 때의 그 일이나 야단이란 말로 한국인은 판의 행동인 ‘거리’를 표현해 온 것 같다.

흔히 “무슨 거리가 될 게 없느냐.”라고 묻는다. 좀 각별한 것, 색다른 것, 그래서 할 거리로 볼 거리로 인식될 만한 것을 구하거나 찾을 때 던지는 물음이다. 극단적일 때는 의외성(意外性), 탈상규성(脫常規性), 곧 일탈성(逸脫性)까지도 이 거리에는 포괄될 수 있다.

‘일 터졌다’느니 ‘일 벌어졌다’고 하는 그 일들이 이에 해당될 것이지만, 이에는 일종의 경악, 당혹, 그리고 흥분을 불러일으킬 자극성이 내장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판에는 다급함이나 절박함 그리고 위기감이 수발되어 있다. “이판사판”, “죽을 판 살 판”에서 그 속성이 유추될 수 있는 이외에 ‘판가름’, ‘판따짐’, ‘판때림’ 등에서도 비슷하게 유추될 수 있다.

당혹감 내지 낭패스러움이 있는 방면 득의(得意)한 자의 앙분(怏忿 : 앙심을 품음)이 판에서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슬아슬함, 막판스러움 등의 감정도 당연히 내포될 것이다.

그러면서 판은 ‘이것이냐 저것이냐!’하는 느낌의 판세, 말하자면 어느 쪽으로 기울지 모르는 절정감, 양단간의 긴장감이 증폭되는 판세가 지배한다. 전환점 내지 전환계기가 될 상황이 곧 판이다. ‘판가름’, ‘판대기’ 등은 이 점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판은 팽팽한 긴장감, 곧 기대와 불안이 섞기는 긴장감에 넘칠 수 있다.

“……할 판”과 같은 보기가 단순한 계제, 계기를 의미할 수도 있으나 달리는 결정적 계기, 계제를 의미할 수도 있게 된다. 사건의 경과나 추이의 요긴한 대목 이외에 시작이나 끝장 같은 대목도 역시 판이란 말의 의미에 포괄될 수 있을 것이다. 판에 경쟁, 승부며 흥망이 걸려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또한 판은 세(勢) 곧 힘이나 기운을 더한 역동성을 의미한다. 판은 판세라서 ‘판몰기’, ‘판치기’를 수반하고 ‘이판사판’이 되고 ‘결판’이 된다.

치닫든 내리닫든 줄달음치는 힘이 판에서는 판친다. 그런가 하면, 판은 참여성이 강조되는 현장이다. 놀음판·싸움판·굿판·난장판은 모두 어우름판이다.

판을 판답게 하는 데는 판꾼들이 있어야 한다. 이 경우, 참여성은 주최자와 모여든 자들, 주역과 구경꾼의 담을 헐어버리는 경지에까지 다다르기도 할만큼 강력하다. 그래서 판은 군집성(무리지움)과 대중성을 크게 부각시킨다. 그리고 모여든 자와 구경꾼의 능동성을 드높인다.

이같이 특수한 계제의 판, 혹은 토막인 판이 지닌 몇 가지 속성을 총괄하면, 조금 과장스럽기는 해도 판은 한국인의 생(삶) 그 자체에 대한 감각 및 관념을 함축하고 있다고도 보여진다.

판에 관한 생각, 판을 대하고 거기 임하는 태도 그것은 한국인의 인생관의 축소판이라고 보여지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인생도 세상도 큰 판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질 정도다.

판은 생의 현장이면서 동시에 연희(놀이)의 현장이라서 ‘퍼포먼스(performance, 연행)’라는 개념과 연관지어서 그 속성이 살펴지기도 할 것이다. 놀이판·굿판·난장판 등에서 이 점은 짐작되고도 남는다. 이런 전제하에서는 ‘마당’과 그리고 ‘거리’와도 전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판은 겹쳐진다.

물론, 무대 내지 무대공간과 거의 같은 뜻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이 때, 양자 사이의 차별상은 아주 엄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무대라고 해도 판에는 테두리나 칸막이가 없다.

마을 앞의 이미 있는 공간이 이내 놀이판이 벌어지는 흥판이 되기 때문이다. 놀이판이나 굿판의 판은 열린 공간이고 시공인 현장이다. 이 열림에는 놀이패와 구경패의 가름이 없다는 것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놀이판이나 굿판의 판, 곧 퍼포먼스의 판은 특수한 계제, 시간의 연속 속에서 특출하게 불거져 나와 마땅한 계기에서 벌어진다.

그것은 세시풍속이며 그와 관련된 종교신앙이 결정짓는가 하면, 개인의 생의 경과가 결정짓기도 한다. 전자는 공동체 전체의 계절적인 통과의례의 시기, 후자는 한 개인의 통과의례의 시기와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굿판은 물론 이들 두 계기와 겹쳐지는 판인 한편, 인간의 삶이며 공동체 경영의 위기라는 계제와 겹쳐지는 판이다. 그러므로, 놀이판·굿판의 판은 인생과 공동체의 관리며 경영과 관련된 의례(儀禮)의 현장을 의미하게 된다. 실상 놀이판과 굿판이 혼연일체가 되는 경우를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판은 볼 거리, 구경거리가 많은, 흥청대는 판이 된다. 그것은 축제성을 갖추고 있다. 신명스러움과 어우러짐이 수반되거니와 마을굿과 더불어서 치러지는 이른바 난장판에서 이점이 강하게 더 한층 극화된다. 실상 난장판은 물건을 거래하는 일반적인 장판의 연장이면서도 그 자체의 강한 개성을 갖춘 특이한 판이다.

물건을 팔고 받은 돈도 판돈이라고 하는 만큼 장이 판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난장판은 그 규모에 있어서나 성격에 있어서나 일반 장판과 사뭇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난장판은 일차적으로는 장거리 내지 장터에 차려진다. 그런 면에서는 난장판도 일종의 장판이다.

그러나 바른 장 내지 오른 장인 ‘정장(定場)’이란 있을 수 있는 개념과 난장(亂場)이 대립적인 함축성을 갖추고 있음에 유념해야 한다. 이 경우, ‘판’이란 단순한 문란이나 혼란이 아니다.

그것은 세속사회의 일상적인 규범을 뒤집어 엎는 전도(顚倒)요 또 의태(擬態)의 반란(叛亂)이기 때문이다. 판이 지닌 축제성이나 카니발다움이 극대화되어서 볼거리, 즐길 거리로 온전히 다른 세계를 연출하기 때문이다.

마을굿과 관련된 또 다른 판은 판굿(판굿놀이)의 판이다. 넓은 뜻으로 판굿(놀이)은 걸립패나 남사당패 그 밖의 농악(놀이)을 지칭하지만, 좁게는 마을굿에 수반된 농악(놀이) 여러 마당 중의 한 마당을 지칭한다.

농악(놀이)의 한 마당으로서의 판굿(놀이)은 풍물과 춤과 사설로 연행된다는 점에서는 농악의 다른 마당과 각별하게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 기능도 마을 안을 풍요롭게 정화하기 위해 온 마을안 사람들이 놀이꾼, 구경꾼 할 것 없이 한데 어우러져 신명을 피우는 데 있기로도 농악(놀이)의 다른 마당과 크게 다를 수 없다. 그것은 어엿한 대동놀이이기 때문이다.

한 공동체의 자기증명과 일체감 그리고 각자의 귀속감이 신바람 또는 신명을 피우는 흥으로서 확인되는 현장이 곧 판임이 이 경우 확인될 수 있다. 그것은 집단적인 오지(orgy, 광란)를 유발하고 종교적 체험이라고 해도 좋을 도취감을 자극하는 현장이다.

향약이나 계와 같은 일종의 법적인 제도와 두레, 품앗이 같은 경제적 조직이 혈연과 지연에 의해서 이미 다져진 마을 공동체의 일체감을 위해서 판굿놀이며 마당놀이의 판이며 마당은 터밭이 되는 것이다.

마을에 따라서는 마당놀이로 대체되기도 하는 판굿(놀이)은, 가령, 문·부엌·샘·측간·장꼬방(장독대)·외양간 등 개인 가옥의 특수한 개체 공간에 바쳐지는 굿과는 구별되는 분명한 일선이 그어진다.

판은 마을 안 모든 주민의 공동의 개방공간, 모두의 삶의 터전이란 것이 이들 공간과의 비교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문·부엌·장꼬방·외양간 등은 개체 가족에 소속된 사적인 공간임에 비해서, 마당이며 판은 공적인 모두의 광장이다.

더욱, 그 곳이 혹은 타작판이 되고 곡식 말리는 공간이 되고 하면서 공익성이 이미 다져져 있는 터전임을 생각해야 한다. 판의 대동성이 사뭇 분명해진다.

마을에 따라서는 판굿(놀이)의 몫을 도맡는 마당놀이이기는 하지만, 한 마을의 농야 안에 판굿(놀이)과 공존하고 있을 때, 그것은 이른바 ‘마당밟기’(지신밟기)와 같은 기능을 맡게 되는 나머지 개인 가정공간에 구축하게 된다.

판은 심지어 그 동류인 마당에 대해서조차 그 공적이고 대동적인 현장성을 보다 더 강하게 드러내 보인다. 농악의 여러 마당(과장) 가운데서 판굿(놀이)이 점유하게 되는 그 특이한 변별적 개성은 또 다른 한 무리의 굿(놀이)에 견주어져서도 두드러진다.

도둑잡이굿·성주굿·소고놀이·진풀이·액맥이굿·조왕굿 등이 이 무리에 속하지만, 이들은 어느 특수한 신명 또는 기능(예능)이며 재주에 초점이 맞추어진 굿이다. 이들은 앞에서 살핀, 문굿·외양간굿·측간굿 등이 개인 가정에 관련된 개별성 강한 속성을 갖추고 있었음과 능히 대비(對比)될 공통의 속성을 향유하고 있다.

전자가 장소의 개별성에, 후자가 재주며 신령의 개별성에 바쳐진 굿이요 놀이기 때문이다. 이로 보아서 판굿(놀이)의 판의 공(公)적이고 대동적인 현장성이 다시 한번 더 강조될 수 있다. 따라서 일부 이 방면, 연구자들에 의해서 판굿(놀이)이 ‘농악의 큰 굿’이라 값매김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농악의 전체 진행이 열두 마당(과장)인데, 그 한 마당인 판굿(놀이)이 그 판굿(놀이)대로 또 열두 마당으로 이룩되어 있음을 두고 ‘큰 굿’이라 일컬어진 것이다.

최덕원(崔德源)의 지적에 의하면, 장구놀이·상쇠놀이·소고놀이·북놀이·열두발 상쇠놀이·무동춤·잡색놀이 등이 이들의 보기이거니와, 이로 보아서 판굿(놀이)이 열두 마당의 농악 각 부분에서 놀아지는 개별놀이의 집약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자체가 개별놀이가 한데, 한마당에서 놀아지는 대동놀이이기 때문이다. 판굿(놀이)은 공동의 공적인 장에서 놀아지는 대동재주놀이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판굿(놀이)이 그만큼 큰 놀이이듯, 그 판 역시 광대한 상징성을, 개방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다른 거리(과장)에서 개인이고 가족구성으로서 신령들과 어울리던 마을 사람들은 바로 판굿(놀이) 과장에서 다들 우리임을, 한 마을 안의 한 구성원임을 신령과 함께 다질 수 있었을 것이다. 조왕굿이면 조왕(부엌신)에게만 바쳐진 놀이다. 외양간굿이면 가축신에게만 봉헌된 놀이다.

한국 가정 내지 가옥은 일종의 만신전이거니와 그들 만신의 각각에 바쳐진 굿과 판굿(놀이)은 사뭇 다르다. 만신 전원과 그리고 마을의 주신인 골막이나 서당(당산신)에게 받들어 올리는 굿(놀이)이 곧 판굿(놀이)이다.

오늘날의 마을굿은 이로써 현대의 영고(迎鼓)가 되고 무천(舞天)이 되고 동맹(東盟)이 될 수 있다. 이 판굿(놀이)에서 한국인의 판이 지닌 사회성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판은 마당과 비슷한말일 수 있고 바탕과 동의어일 수도 있다. 열린 공간이란 뜻으로 판은 마당이고, 사건의 현장이란 뜻으로는 ‘한 바탕’의 바탕이다. ‘한 바탕’ 난리를 또는 야단을 치렀다고 할 때의 바탕은 ‘한 판 벌어졌다’고 할 때의 판과 매우 유사하다.

농악에다 탈춤 같은 몸사위며 발림 그리고 남사당패 같은 놀이 그리고 잡가나 시나위 같은 창이나 소리, 그리고 춤 등이 한데 어우러져 극적인 서사성을 연출하는 것이 이른바 그것은 전통연희의 종합이거니와 마당놀이다. 무대에서 공연될 때조차 거리나 동구안 마당이기나 한듯 칸막이며 테두리가 없는 듯이 연행된다.

강한 시사성, 현장성을 갖춘 데다 관중의 참여를 유도하고, 유도된 참여에 따른 즉흥성도 높게 갖추고 있다. 그것은 엄청난 어우럼판이다. 이 같은 마당놀이의 마당다움은 판굿(놀이)의 판에 옮겨질 수 있다. 이 경지에서 판은 마당과 거의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어느 쪽이나 ‘대동놀이’라고 할 때의 대동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지만, 판놀이의 판다움이나 마당놀이의 마당다움을 말할 때, 또는 그 판 및 마당다움을 강조할 때, 이 대동성(大同性)은 참여성이나 어우러짐의 또 다른 이름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판은 한국인이 우리가 될 수 있는 열린 현장이다. 판은 한국인이 우리로서 함께 공존할 터전이다.

참고문헌

『한국신화(神話)와 무속(巫俗)연구』(김렬규, 일조각, 1980)
집필자
김열규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