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훈(表訓)은 의상(義相, 625~702)의 법을 계승한 화엄 전공 승려이다. 『삼국유사』에는 의상의 10대 제자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법계도기총수록(法界圖記叢髓錄)』에 의하면, 표훈은 674년(문무왕 14)에 황복사(皇福寺)에서 의상으로부터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와 『화엄경』을 배웠다고 한다. 이때 표훈이 “나는 여러 연(緣)으로 이루어진 존재, 여러 연은 나로써 연을 이루었네. 연으로 이루어진 나이기에 체(體)가 없고, 나를 이룬 연에도 성(性)이 없네[我是諸緣所成法 諸緣以我得成緣 以緣成我我無體 以我成緣緣無性]”라는 시를 지어 의상에게 바쳤는데, 이 시를 「오관석(五觀釋)」이라고 한다. 이로써 표훈은 의상으로부터 법(法)을 인가(認可)받았다고 한다.
의상은 귀국한 후 왕실의 존중을 받았지만, 도읍을 떠나 소백산에 부석사를 창건하여 그곳에서 문도(門徒)들과 화엄 교학과 수행을 하며 지냈다. 의상 이후 지통, 진정 등 의상의 문도들은 부석사와 그 주변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신림과 표훈을 계기로 의상계는 8세기 중엽 도읍으로 진출하였고, 이후 신라 불교계의 주도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표훈은 김대성(金大城)이 창건한 불국사(佛國寺)에 머무르며 『화엄경』을 강하였고, 동문인 능인(能仁) · 신림(神琳) 등과 함께 금강산에 표훈사(表訓寺)를 창건하여 초대 주지가 되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서는 경덕왕 때 김대성이 불국사와 석불사(石佛寺)를 창건한 후 신림을 불국사 주지로, 표훈을 석불사 주지로 청하여 머물게 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표훈의 사상에서 석불사(현 석굴암)가 조성된 사상적 배경을 찾는 연구가 많다.
표훈은 천궁(天宮)을 자유롭게 내왕하며 천제를 만날 수 있어 성인이라 불렸다고 한다. 경덕왕이 표훈을 통해 태자를 낳게 해달라고 천제에게 부탁하였다고 하는 설화가 유명하다. 경덕왕은 “내가 복이 없어 아들이 없으니 천제에게 청하여 아들을 얻게 하라”고 부탁하였다. 천제가 딸은 얻을 수 있지만 아들은 어렵다고 하자, 왕은 거듭 아들을 청하였다. 천제는 아들일 경우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라 경고하였으며, 표훈에게는 천기(天機)를 누설하였다고 꾸짖으며 다시는 천궁으로 오지 말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태어난 아들이 혜공왕이다. 9세기 흥륜사에 신라십성(新羅十聖)의 소상을 만들 때 표훈의 소상도 포함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