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1347년(충목왕 3) 2월에 전민(田民)의 겸병사태(兼倂事態)를 바로잡기 위하여 설치된 정치도감(整治都監)의 정치관(整治官)으로 활동하였다.
기황후(奇皇后)의 친족인 기삼만(奇三萬)의 불법적인 토지겸병을 다스리는 과정에서 기삼만이 옥사(獄死)하게 되자, 그 해 10월 원나라로부터 온 사신에 의하여 백문보(白文寶)·신군평(申君平) 등의 정치관들과 함께 국문당하였다. 뒤에 찬성사로 치사하고 진주군(晉州君)으로 책봉되었다. 시호는 원정(元正)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