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혜왕의 사부(師傅)로 홍법사(洪法寺)에 머물렀다. 거문고·그림·의술 등에 능하고, 한어(漢語)·몽고어를 잘하였다. 충혜왕이 존경하여 사부로 칭하였다. 홍법사에 있던 1342년(충혜왕 3) 6월 왕이 행차하여 오래 사는 비결을 물었다.
이에 “사람은 정한 분수가 있고, 한계를 넘는 이치가 없으니, 다만 악한 일을 해서 수명을 재촉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진언(進言)하였다. 또, 왕이 술사(術士)의 말을 믿고 숭교사(崇敎寺)를 헐고자 함에, 이를 그만두도록 진언하였다.
왕이 사부라 칭함에 전에 올라도 절을 하지 않으니 당시의 사람들이 미워하였다. 왕의 총애를 믿고 왕지(王旨)를 꾸며 죄수를 놓아줌에 1343년 4월에 왕이 노하여 감찰사(監察使)에게 명하여 문초하고, 제주도에 유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