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교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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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이나 한자어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교육.
내용 요약

한자교육은 한문이나 한자어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교육이다. 기자조선 시대에 한자·한문이 유입되었으며, 조선시대에 와서 한자어의 사용이 늘어 한자·한문의 교육이 중요해졌다. 한자 교육의 초기에는 『천자문』이 쓰이다가 『유합』과 『훈몽자회』, 『신증유합』이나 『아학편』 등이 교재로 사용되었다. 다음 단계에서는 『동몽선습』·『격몽요결』 등이 교재로 쓰였고, 그 후 본격적으로 사서오경 등을 가르쳤다. 한자는 한문과 한자어의 이해를 위해서 필요하므로 한문 교육의 필요성이 감소되어도 한자 교육의 필요성은 없어지지 않았다.

목차
정의
한문이나 한자어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교육.
내용

한자 · 한문이 우리 나라에 유입된 시기와 경로는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중국에서 만들어진 한자가 그곳에서 상당히 보급된 다음 종족간의 교섭에 의하여 서서히 유입되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른바 기자조선에서 위만조선에 이르는 시기에는 이미 한자 · 한문이 유입되었을 것이며, 한사군 설치와 한족의 이민을 계기로 한자 · 한문은 활발히 유입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3세기 후반에는 이미 학문을 일본에 수출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6세기에는 한자 · 한문이 토착화되었다. 이 때부터 한자어의 생성이 표면화되었다. 신라 지증왕 이후의 왕명과 주 · 군 · 현(州郡縣) 등 행정구역명, 그리고 법률과 제도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중국식 한자어를 사용한 것이 그 예이다.

그 뒤 신라 · 고구려에서의 국사 편찬과 문학작품 등이 한문으로 이루어졌고 한문은 고유어 체계 속으로 침투하여 한자어 생성을 촉진하였다. 통일신라는 정치 · 제도 · 학예 · 종교 등 여러 분야에서 미증유의 융성을 보였으며, 고려일대의 문화를 담당하여온 유학과 불교는 문학 · 사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가운데 한자어는 매우 급속하게 증가되었으며, 고유어는 한자어에 밀려서 그 일부가 한자어로 대체되는 현상이 이미 이 시기에 나타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선시대에 와서 유교는 치국과 교육의 대본이 되어 왔다. 훈민정음 반포 이후에도 한문 숭배의 사상은 고양되기만 하였고, 이러한 사상과 사회환경 속에서 한자어는 크게 증가하였다.

또, 그 뒤 서양에서 많은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많은 용어들이 한자어로 번역되었고, 중국이나 일본에서 한자어로 번역된 용어가 들어왔다. 그리하여 한자의 주1가 크게 논란되는 가운데서도 한자어의 수는 불어나기만 하였다. 이렇게 되자 한자나 한문의 교육은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한자 · 한문 교육의 초기단계에서는 『천자문』이 쓰였으며, 그러다가 우리 나라에서 유합류(類合類) · 자회류(字會類)가 만들어져서 한자교육을 위한 교재로 사용되었다. 그 가운데 잘 알려진 것이 『유합』『훈몽자회(訓蒙字會)』이다. 특히 『훈몽자회』는 『천자문』이나 『유합』 등이 일상생활과 거리가 먼 고사(故事)와 추상적인 내용이 많기 때문에 아동들의 학습서로서 부적합하여 이를 보충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밖에 『신증유합(新增類合)』 · 『아학편(兒學編)』 등이 있는데, 이들은 초보적인 한자교육을 위한 교재로 쓰였다. 다음 단계에서는 『동몽선습(童蒙先習)』 · 『격몽요결(擊蒙要訣)』 등이 한자 · 한문 교재로 쓰였고, 다음 단계에서 본격적으로 주2 등을 가르쳤다.

한자는 한문만이 아니라 한자어의 이해를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므로 한문교육의 필요성이 결정적으로 감소된 뒤에도 한자교육의 필요성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한자 사용의 공과가 논의되기에 이르렀으며, 한자를 폐지하고 한글을 전용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왔다.

1945년 9월 29일에 「한자폐지실행회 발기 취지서」가 한자폐지실행회발기취지준비위원회에 의하여 발표되고, 그해 12월 8일 조선교육심의회의 문자정책에 관한 결정사항 속에도 한자 폐지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그리고 1951년 9월에 「상용일천한자표(常用一千漢字表)」가, 1957년 11월에는 「임시제한한자일람표(臨時制限漢字一覽表)」가 문교부(현재의 교육부)에 의하여 공표되었다. 이는 그 뒤에 「상용한자(常用漢字)」로 명칭을 바꾸었다.

1962년 4월 17일 「한글전용 특별심의회 규정」이 나오고, 1968년 12월 24일에 국무총리 훈령 제68호로 「한글전용에 관한 총리훈령」이 나왔다. 1972년 8월 16일에 한문과교육과정심의위원회(漢文科敎育課程審議委員會)를 거쳐 확정된 중 · 고등학교 한문교육용 제한한자 1,800자가 공표되었다. 이와 같이 한자교육은 ‘무제한’의 것으로부터 ‘제한’으로 달라지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한자를 완전히 폐지하자는 의견과 제한된 한자를 사용하고 교육하자는 의견이 대립되어 있다. 더구나 한자어마저도 순수한 우리말로 바꾸자는 의견까지 있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또, 당장 한자를 완전 폐지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와 같은 언어 · 문자의 문제는 하루아침에 개혁될 성질의 것은 아니므로 많은 연구와 조사, 검토 끝에 단계적으로 새로운 방향을 잡아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한자어에 관한 연구』(이용주, 삼영사, 1974)
『국어교육사연구』(이응백, 신구문화사, 1975)
『국어어휘론』(심재기, 집문당, 1982)
주석
주1

공로와 과실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2

사서와 오경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의 네 경전과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의 다섯 경서를 이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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