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명은 눌인(訥人)·용강학인(龍岡學人)·한민(韓民)·백웅(白熊). 평안남도 용강 출신.
16세 때 중국으로 건너가 난징(南京)진링대학(金陵大學) 부속 중학교를 졸업하고, 1921년 도미하여 남캘리포니아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1930년 9월에 귀국하였다. 이듬해 9월 서울에서 철학연구사(哲學硏究社)를 설립하고, 1932년 9월부터는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취임하였다.
귀국 후부터 정력적인 저술활동을 시작하여 ≪신심리학개론≫(1930)·≪논리학개론≫(1931)·≪아동의 심리와 교육≫(1932)·≪사회학개론≫(1933)·≪종교개혁사요≫(1933)·≪종교철학개론≫(1934)·≪증보윤리학개론≫(1934)·≪최신철학개론≫(1936) 등 당시 철학이 다루는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개설서를 집필, 간행하였다.
특히, 당시 미국학계에서 성행하던 고전철학 및 실용주의철학의 신조류와 서구의 사회학과 심리학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1936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직을 사임한 다음 1939년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서 연구하면서 일본어로 ≪인격심리학원론 人格心理學原論≫을 출판하였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자 9월에 남조선과도정부 공보부 여론국 교육과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민주주의원론>을 방송으로 연속 강의하였다. 1947년 5월 광복전의 철학연구사를 부활, 개편하여 조선문화연구사(朝鮮文化硏究社)를 재창립하였으며, 1947년 7월 서울대학교 교수로 취임하였다.
이 해 11월 공보부 여론국 정치교육과의 고문을 겸하면서 이 부서의 기관지인 ≪민주조선 民主朝鮮≫의 주간을 맡았다. 1948년 8월 대한민국정부의 수립으로 <민주조선> 발행이 중지되자, 그 해 10월부터 ≪자주생활 自主生活≫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개인잡지로 발행하였다. 철학·종교학·사회학·심리학·정치학 등의 여러 분야에 걸친 29권의 저서를 남기고 있으며, 각종 신문·잡지에 쓴 논문 99편이 밝혀지고 있다. 1950년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