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태이(泰而), 호는 유촌(柳村). 한상(韓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성원(韓性源)이고, 아버지는 한담(韓談)이며, 어머니는 민세주(閔世舟)의 딸이다. 한의(韓儀)에게 입양되었다.
1606년(선조 39) 진사시에 합격하고, 1620년(광해군 12) 호조좌랑으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의성현령을 거쳐 장령을 지냈으며, 동부승지에 발탁되었다. 수령을 지내면서 형률을 과다하게 집행하여 바르고 깨끗한 인망이 없다는 이유로 직을 내놓았다.
그러나 1637년(인조 15) 다시 우승지에 임명되고, 행좌승지·병조참의를 거쳐 도승지에까지 이르렀다. 1642년에는 세자를 배종하여 심양(瀋陽)에 다녀오기도 하였으나, 심양에 있으면서 세자를 잘 보필하지 못하고 심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조정에 상세히 보고하지 않았다는 탄핵을 받고 서울로 압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