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희중(希仲). 한숙(韓俶)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세침(韓世琛)이고, 아버지는 통례 한원(韓垣)이며, 어머니는 이성수(尼城守) 이존관(李存官)의 딸이다.
1555년(명종 10) 생원·진사시에 모두 합격하고, 1558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62년 중종의 능을 옮길 당시 재궁시위집사로 임명되었고, 다음해 사서를 지냈다. 1564년에는 지평, 다음해 헌납, 1566년 병조정랑에 임명되었다.
그 뒤에도 지평·병조정랑·장령·봉상시첨정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명종실록』 편찬시에는 직강(直講)으로 춘추관에 관여하였다. 1573년(선조 6) 장령으로 임명되었을 때에는 대간의 체모를 생각하지 않고 출사를 청탁하였다는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582년 그가 사예로 있을 때 명나라의 황태자가 탄생하자 조서를 반포하기 위하여 사신이 왔다. 사신들이 성균관에서 문묘를 참배하고 존경각(尊經閣)에 들어가 『국조오례의』를 보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선조가 진노하여 『국조오례의』를 명나라의 사신에게 보게 하였던 사성 이하는 모두 옥에 가두게 하였는데, 그도 책색관(冊色官)으로 하옥되어 국문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