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당진(唐津). 자는 원원(源源). 한섭(韓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윤우(韓允佑)이고, 아버지는 한근(韓瑾)이며, 어머니는 이평(李泙)의 딸이다. 공조판서 한숙(韓淑)의 아우이다.
참봉으로 1546년(명종 1)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문과에 급제하기 전인 1537년·1538년·1539년에 전강 등에서 1등으로 회시에 직부되거나 가산점을 받기도 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년)의 을사사화에서 형 한숙(韓淑)이 관련자의 공초(供招: 죄인이 범죄 사실을 진술한 말)에 이름이 드러나 파직되었다가 이듬해에 이산(理山)으로 귀양갔다.
둘째 형인 한주(韓澍)도 이때 관작을 삭탈당하였다. 1547년 9월 양재역 벽서사건이 발생하자, 권지승문원부정자였던 그도 역시 윤임(尹任)과 한 마을 사람으로서 교통이 있었다는 이유로 관작삭탈과 문외출송을 당하였다.
이후 낙향하였다가 선조가 즉위하면서 다시 관계에 등용되기 시작하였다. 1570년(선조 3)에 장령을 지냈으며, 1573년에는 홍문록(弘文錄: 홍문관의 제1차 인사기록)을 과시(科試)하였는데 6권 1등으로 뽑히는 영예를 안았다. 이후에 집의·판교(判校)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