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의 반계제·봉계리 유적들과 함께 합천댐공사로 인해 수몰위기에 처하게 되어 1986년 11∼12월에 경상대학교박물관에서 긴급히 조사하였으며, 지금은 완전히 수몰되었다.
유적은 황강(黃江) 상류역에 위치하며 해발 570m의 강덕산(講德山)에서 뻗어 내린 산기슭의 말단부와 강변의 경작지대가 접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유구는 등고선과 평행되게 설치된 20기의 작은 구덩식 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들이 확인되었다. 이중에서 조선시대 무덤인 17호를 제외하면 모두 가야고분이다.
돌덧널은 대부분 지표에서 얕게 묻혀 있었기 때문에 유구의 상부는 많이 유실되었다. 그러나 몇몇 유구에서는 뚜껑돌〔蓋石〕이 완전하게 남아 있는 것도 있었다. 평면은 장방형을 이룬다.
측벽은 수직의 무덤구덩이〔墓壙〕를 판 뒤 최하단을 납작한 자연석이나 깬돌로 세우거나 눕히고 그 위에 깬돌로 2∼3단 횡평적(橫平積)해 쌓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닥에는 자갈을 깐 2호분 외에는 특별한 시설이 확인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구조를 가진 돌덧널무덤은 가야 후기 묘제에 있어서 하나의 특징적인 요소로 생각된다.
유물은 토기 60점, 철기 18점, 청동피금제 귀걸이 4점, 가락바퀴〔紡錘車〕1점 등 모두 83점이 발견되었다. 토기는 긴목항아리〔長頸壺〕·짧은목항아리〔短頸壺〕·뚜껑접시〔蓋杯〕·연질옹(軟質甕)·소형그릇받침〔小形器臺〕·굽다리접시〔高杯〕등이 발견되었으나 굽다리접시가 2점밖에 발견되지 않은 것이 특이하다. 또한 대부분의 유구에서 뚜껑접시와 연질옹·항아리〔壺〕가 하나의 조합을 이루며 발견되는 것이 특색이다. 토기와 귀걸이 이외에도 화살촉·낫·손칼·집게 등이 발견되었다.
중반계고분군의 조성연대는 구덩식 돌덧널무덤의 구조나 출토된 토기의 형태 등으로 볼 때, 고령 지산동 제45호분 단계인 6세기 전반대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유물의 출토량이 빈약하며 강대한 신분을 상징하는 자료도 없다. 다만 이 유적의 피장자들은 고분군의 규모가 작고 부장유물이 소량의 토기류와 농공구류로 구성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당시의 피지배층으로 생각된다.
중반계고분군은 1㎞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반계제고분군의 하위고분군으로 여겨진다. 출토된 유물은 고령·합천 등 ‘대가야문화권’에 속하는 유적에서 출토되는 자료들과 거의 같은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유적의 발굴은 대가야문화가 이 지역으로 파급된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