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피리는 향악기와 합주했던 피리로 당피리와 다른 제도를 가진 악기이다. 향피리는 5세기 고구려가 서역과 교류하면서 수용하여 한반도식으로 변형시킨 서역의 주6로, 고려 시대 송나라의 신형 피리가 유입되기 이전까지 연주되었던 피리의 전통을 계승한 피리 전반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향피리는 한반도에서 천년이 넘게 전승되어 오면서 그 모양과 제도가 여러 번 변했기 때문에 특정하여 정의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송나라에서 넘어온 주7와 합주하던 ‘당피리’와 구분하면서 시작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향피리를 좁은 의미로 해석한다면 조선의 『악학궤범(樂學軌範)』에 기록된 8공의 향피리를 의미하며 그 제도가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한반도 향피리의 전통은 고구려의 피리로부터 출발하였다고 볼 수 있다. 주8에 따르면 고구려악에서 사용된 피리에는 소피리와 도피피리가 있고, 주9와 주10 고구려악에는 소피리, 도피피리, 주27가 편성되어 있다. 당시 많은 지역에 수용된 소피리와 대피리는 여러 나라에서 두루 쓰이는 악기로 기록되어 있으나, 주11에서 도피피리는 특히 고구려와 남만이 주로 사용하는 악기로 기록되어 있다. 『당서(唐書)』와 『통전』에서는 고구려악뿐 아니라 백제악에 도피피리가 편성되어 있으며, 『문헌통고』에는 도피피리의 옛 이름이 ‘관목(官木)’이며 고구려와 남만에서 사용한다고 주1 『악서(樂書)』에는 도피피리의 도상이 그려져 있는데, 피리 관대의 겉면에 도피 껍질을 두른 6관의 겹서 악기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후에 송의 고취악대에서도 편성되어 연주되었다.
도피피리가 6관을 가진 악기라는 사실은 향악기인 주12, 그리고 일본에 전승된 고려적과 동일한 관수를 갖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일본의 역사서인 주13에 809년 일본에서 고구려와 백제 악사가 연주한 막목(莫目)의 기록이 존재한다. 옛 이름이 ‘관목’으로 알려진 도피피리가 이 막목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가 주2 일본 가가쿠의 우방악인 고마가쿠〔高麗楽〕의 주선율 담당 악기가 피리계 악기인 주14라는 점에 근거하여 막목이 피리계 악기였을 가능성은 높다는 주3도 있다.
『고려사(高麗史)』 향피리 관련 기록을 살펴보면 아직까지 향피리라는 용어는 존재하지는 않으나 당악(唐樂)에 사용되었던 피리와 속악(俗樂)에서 사용되는 피리 주15의 갯수가 다름을 표기하고 있다. 당악에 속한 피리는 9공〔觱篥(孔九)〕, 속악에 속한 피리는 7공〔觱篥(孔七)〕으로 구별되어 있는데 이를 토대로 도피로 감쌌던 도피피리의 외형적 전통이 고려까지 이어졌는지 충분하게 파악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지공의 수를 통해 6관 도피피리의 전통을 이어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비로소 향피리(鄕觱篥)라는 기록이 나타난다. 『악학궤범(樂學軌範)』 향피리의 산형을 확인해 보면 고려 속악에 편성되었던 피리와 달리 그 제도에 변화가 생겼음이 확인된다. 대금과 동일한 관수를 가지고 있던 6관의 피리에서 당피리와 동일한 7관의 피리로 변화된 것이다. 외형은 당피리와 동일하게 변하였으나 연주자 사이에 전승되는 향피리의 연주법에 내려잡는 것(7관)과 치켜잡는 것(6관)이 있어 6관과 7관 중심의 연주가 모두 가능한 형태로 확장된 형태임을 엿볼 수 있다. ‘관(宮)’의 위치가 3관에 배치된 특성이 있으며, 마디가 없는 주16로 관대와 서를 모두 제작하였다.
향피리의 재료는 서(double reed)와 관대(pipe) 모두 신우대를 사용한다. 중국의 피리계 악기인 관자가 과일 나무를 사용하여 관대를 제작하고, 갈대를 사용하여 리드를 만들며 일본의 피리 계열 악기인 히치리키는 신우대로 관대를 제작하고, 갈대를 사용하여 리드를 만들고 있는데 반해, 한반도의 피리는 리드를 신우대를 사용하여 만드는 데서 구분되는 지점이 있다. 갈대보다 밀도가 높고 내구성이 강한 대나무를 사용하여 리드를 만들어, 갈대로 만든 리드에 비해 강한 주18이나 주19, 주20에도 견딜 수 있는 단단함이 있는 것이 특성이다.
현재의 향피리는 전공 7, 후공 1의 총 8공의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향피리는 외관상으로 모두 같아 보이지만 연주자들은 연주하는 악곡에 따라 크게 정악용 관대와 민속악용 관대를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정악용 피리는 정악용 대금과 동일한 관수에서 동일한 음이 연주되는 악기로 3관에 황종(Eb~E)이 배치되어 있고, 전폐음은 Ab이다. 이 악기로 정악보에 있는 향피리 곡 전반을 연주한다. 민속악용 관대는 정악용 피리보다 장 2도 높은 형태이며 최저음이 Bb으로 대풍류, 취타풍류, 관현악에 주4 이 외에도 연주자의 편의에 따라 지공의 위치를 변경하여 장르별 연주에 용이하게 만든 산조용 피리, 상령산풀이용 등의 다양한 향피리 관대가 존재한다. 특히 창작 음악에서 사용하는 향피리 Bb 관대는 좁은 피리 음역을 넓히고자 후공 근처에 키를 달아 고음 역취에서 네 음 정도가 더 연주될 수 있도록 변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