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

향피리(당피리, 세피리)
향피리(당피리, 세피리)
국악
물품
지공이 있는 관대에 겹서〔舌〕를 끼워 부는 종적 악기.
이칭
이칭
필률
물품
재질
시누대(대나무)
용도
음악연주
관련 의례
종묘제례악, 서울굿, 국악관현악 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피리는 지공이 있는 관대에 겹서〔舌〕를 끼워 부는 종적 악기이다. 실크로드 구자국의 대표 악기 중 하나로 4-5세기 아시아 전반에 수용된 겹서(double reed) 악기이다. 삼국시대 고구려악에 수용된 후 한반도화 된 피리는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군례, 연례, 제례 등 각종 합주에서 주선율을 담당하며 주요 국악기의 하나로 전승되었다. 근래에는 笛, 簫, 觱篥 등의 한자가 모두 ‘피리’로 번역되면서, ‘피리’라는 용어는 ‘부는 악기의 통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정의
지공이 있는 관대에 겹서〔舌〕를 끼워 부는 종적 악기.
연원

피리는 주1을 건국한 여광(呂光)에 의해 384년 구자국이 함락된 후 중원에 유입된 주2의 관악기로, 아시아 전 지역으로 퍼져나간 서역의 주3 슬픈 음색을 가지고 있어 “悲篥”이라고도 하였는데, 수와 당나라의 음악지에서는 ‘비리’ 혹은 ‘피리’라고 부르던 서역의 악기명을 음차하여 ‘篳篥’, ‘觱篥’, ‘必篥’ 등 여러 형태로 주4 이 한자가 악기와 함께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악기명의 변화가 발생하였는데, 일본에서는 피리를 ‘篳篥’의 일본식 발음인 ‘히치리키’로 불렀고, 중국에서는 주선율 악기라는 뜻을 담은 별칭 ‘頭管’으로 기록하다가 현재는 ‘관자’라 부른다. 한반도에서는 ‘觱篥’이라 기록했으나 한국식 한자 발음인 ‘필률’보다는 서역의 발음 그대로 ‘피리’로 주5 20세기 이후에는 한글이 상용화되는 과정에서 笛, 簫, 觱篥 등의 한자가 모두 ‘피리’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피리’라는 용어는 ‘부는 악기의 통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수(隨)와 당(唐)의 음악지에 기록된 피리는 5세기를 전후하여 구자, 소륵, 안국, 주6, 주7, 주8, 고구려 등 여러 나라에서 사용하는 국제적 악기였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고구려악에 사용된 피리 관련 기록을 보면, 그 종류로 대피리(大篳篥), 소피리(小篳篥), 도피피리(桃皮篳篥)가 있다. 이 중 도피피리는 고구려와 주9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악기로 기록되어 있으며, 송나라 고취(鼓吹) 악대에 편성되기도 하였다. 피리는 통일신라의 ‘삼현 주10’ 편성에 속하지는 않았으나, 통일신라시대 범종에 새겨진 피리의 조각상과 『 고려사(高麗史)』, 『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그 존재가 확인됨으로써 삼국시대 이후 한반도에서 지속적으로 연주되었음을 알 수 주11

고려에서 사용한 피리는 고구려에서 사용했던 ‘대피리, 소피리, 도피피리’와 같이 외형적 특성을 기준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성격에 따라 분류되었다. 『고려사』에 의하면 당악(唐樂)에 속한 피리는 9공, 속악(俗樂)에 속한 피리는 7공으로 구분되어 있어 악기의 제도에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 시대 당악에 편성된 9공의 피리는 문종 30년(1076)에 둔 대악관현방(大樂管絃房)에 필률업사(篳篥業師)에 관한 기록과 관련이 있고, 예종 9년(1114)에 송나라에서 들여온 신악기(新樂器)에 속하는 피리와 관련이 있다. 이 악기가 새로 유입됨에 따라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에서 연주되었던 피리와 구분이 주12

조선 시대에는 당피리(唐觱篥), 향피리(鄕觱篥)라는 용어를 통해 피리를 구분하였다. 피리에 관한 상세한 도상과 정보를 담고 있는 『 악학궤범(樂學軌範)』을 살펴보면, 당피리와 향피리는 그 제도에 있어 차이가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당피리는 고려의 9공 당피리에서 실제 음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아랫후공을 하나 없앤 8공으로 변화되었다. 아악 12율의 첫 음인 황종〔合字聲〕이 전폐음을 연주하는 7관에 배치되어 있으며, 마디가 있는 황죽과 신우대로 주13를 삼아 악기를 제작하였다. 다음으로, 향피리는 대금과 동일하게 6관을 가진 형태에서 전공의 갯수를 하나 늘려 당피리와 동일하게 7관의 악기로 변화되었음을 알 수 주14 그러나 연주자들이 주15 향피리의 연주법에서 대금과 관수를 동일하게 6관으로 맞추어 “피리를 치켜잡아” 연주하는 방식이 주16 따라서 조선의 향피리는 기존 6관 피리 주법을 유지하면서도, 7관 주법을 연주할 수 있도록 확장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피리를 치켜잡아 6관 연주법으로 연주하는 악곡에는 취타, 자진한잎, 관악영산회상, 대풍류 등이 있으며, 내려 잡고 7관 연주법으로 연주하는 악곡에는 관현편성으로 연주하는 수연장, 평조회상, 여민락 등이 있다. 마디가 없는 신우대로 관대와 서를 모두 제작하였으며 ‘宮’의 위치가 3관에 배치된 특성이 있다. 향피리는 음량을 줄인 형태로 풍류방용 피리로 변형되기도 하였는데, 이는 세피리라 부른다.

형태와 제작 방식

피리계 악기는 국가마다 주17의 수나 재료에 차이가 있다. 그러나 겹서(double reed)를 지공이 있는 관대에 끼워서 종적 형태로 연주하는 최소 형태를 가졌을 때, 그것을 피리계 악기로 볼 수 있다. 한반도에서 전해진 또 다른 겹서 악기에 태평소가 있으나, 태평소나 중국의 주18와 같은 악기들은 피리계 악기에 비해 좁은 너비의 리드를 사용한다. 피리계 악기의 리드들은 넓고 커서 연주가 까다로워 전문집단에서 강한 입술근육 훈련을 받아야 연주가 가능한 특성이 있다.

특히 한반도의 피리는 갈대가 아닌 밀도가 높고 단단한 신우대로 만든 리드를 사용하는데 이것을 ‘서’라고 부른다. 서와 관대를 만드는 재료는 좋은 토양의 양지바른 곳에서 약 4개월간 채취를 할 수 있는데, 그 기간은 11월부터 2월 말까지 4개월간이다. 재료는 길이가 4.5m~8.5m가 가장 좋고 또 굵기는 12.5 ~14.5㎜ 를 선택한다. 3년에서 6년 정도 밭에서 묵힌 후 베어 통풍이 잘되고 그늘진 곳에서 1년에서 2년 정도 자연 건조를 시킨 다음에 제작한다.

관련 풍속

피리는 국악기 중 비교적 큰 음량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무대라는 개념이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던 20세기 이전까지 야외 행사에서 효과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궁중의 제례악, 연례악, 군례악 전반에서 주선율을 담당하였으며 관아와 민간의 잔치에서도 선율을 주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주19와 회갑연과 같은 잔치의 행진, 춤 반주, 노래 반주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관악영산회상, 취타, 자진한잎과 같은 악곡을 주20 이처럼 피리는 궁중과 민간에서 폭넓게 사용된 악기로, 각종 합주 음악에서의 주요한 역할을 기반으로 현재까지 주요 국악기 중 하나로 전승되고 있다.

변천 및 현황

조선시대까지 연주되었던 당피리, 향피리, 세피리의 전승은 일제강점기에도 지속되었다. 그러나 근대식 교육이 도입되고 주21이 유입되면서 계급에 따라 분리, 전승되었던 조선의 연례, 제례, 풍류방, 관속 음악 등은 모두 뒤섞이게 된다. 이 시기에는 조선의 관속 음악이 급속도로 축소되었고 피리 연주자의 수도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에, 피리를 교육하는 유일한 관속 기관이었던 이왕직 주22에서는 격에 따라 구분이 있었던 피리를 한 사람이 모두 학습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피리 연주자들은 당피리, 향피리, 세피리 모두를 학습하게 주23 ‘보존’에 목표가 설정되면서 구전으로 전승되던 피리곡 전반이 악보로 정리되고 정형화되는 변화를 겪게 된다.

민간의 피리연주자들은 회갑연, 마을굿 등에서 수요가 있었던 주24이나 춤과 노래의 반주를 담당하며 기능 음악의 즉흥성을 유지하였으나, 수요가 없는 곡은 연주하지 않으면서 특정 악곡만 전승하게 되었다. 이에 이왕직 아악부에 의해 정리된 피리 음악은 정악으로, 민간 연주자들이 전승한 피리 음악은 민속악으로 주25

한국전쟁 이후 남과 북에서는 양악식 오케스트라의 영향을 받아 민족배합관현악단 혹은 국악관현악단을 창설하였다. 관현악에서는 화성적 구조를 적극 활용하였기 때문에 중음역대인 피리의 음역확대를 위해 대피리, 고음피리 등이 새로 고안되었다. 전통 악기와 서양 악기의 결합에 적극적이었던 북측에서는 피리 관대의 재질을 신우대에서 단단한 과일나무로 바꾸고, 키를 달아 개량 대피리, 저피리, 소피리를 주26 남측에서는 기존의 음색을 유지하고자 비교적 소극적인 개량이 이루어졌으며 최소한의 키를 부착한 대피리와 고음피리가 만들어졌다. 현재 남한의 국악관현악단에서는 남측에서 개발한 대피리, 고음피리 외에도 북한의 개량 대피리, 저피리를 수용하여 연주하고 있다.

참고문헌

원전

『隋書』
『唐書』
『日本後紀』
『樂書』
『高麗史』
『樂學軌範』
『李王職雅樂部樂譜』

단행본

기시베 시게오·송방송, 『고대 실크로드의 음악』 (삼호출판사, 1990)
박형섭, 『조선민족악기총서』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4)
송방송, 『증보 한국음악통사』 (민속원, 1994)
양인리우, 이창숙 옮김, 『중국고대음악사』 (솔출판사, 1999)
이숙희, 『조선후기 군영악대』 (태학사, 2007)
이진원, 『한국고대음악사의 재조명』 (민속원, 2007)
이혜구, 『신역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임혜정, 『한국 가면극의 음악』 (민속원, 2019)
진윤경, 『한국의 피리』 (신성출판사, 2012)

논문

문주석, 「한국 고대 피리의 연원(淵源)에 관한 소고(小考)」(『민족문화논총』 45, 2010)
이용식, 「피리의 기원과 서역 문화의 영향」(『예술논집』 22, 2021)
주석
주1

중국의 오호 십육국 가운데 386년에 전진(前秦)의 장군 여광(呂光)이 간쑤(甘肅) 지방에 세운 나라. 403년에 후진(後秦)의 요흥(姚興)에게 망하였다. 우리말샘

주2

중국 한(漢)나라 때에,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의 쿠처(庫車) 부근에 있던 나라. 한나라에 예속된 적이 있으며, 남북조 시대 및 당나라 초기에는 불교가 융성하였다. 우리말샘

주3

양인리우, 이창숙 옮김, 『중국고대음악사』, 솔출판사, 1999, 216p

주4

문주석, 「한국 고대 피리의 연원(淵源)에 관한 소고(小考)」, 『민족문화논총』 45권, 2010,

주5

진윤경,『한국의 피리』, 신성출판사, 2012, 54p

주6

5~7세기에, 동투르키스탄의 투루판 분지에 있던 나라. 전한 시대에 이주한 한인(漢人)의 자손이 튀르크계 토착민을 제압하고 세운 식민지 왕조로, 640년에 중국 당나라에 멸망하였다. 우리말샘

주7

‘인도’의 옛 이름. 우리말샘

주8

중국의 오호 십육국의 하나. 400년에 한인(漢人) 이고(李暠)가 북량(北涼)으로부터 독립하여 세운 나라로, 간쑤성의 서북부 둔황(敦煌)에 도읍하였으나, 421년에 북량의 몽손(蒙孫)에게 패망하였다. 우리말샘

주9

중국 만주 지방의 남부. 궁주링(公主嶺) 이남의 땅을 이른다. 우리말샘

주10

통일 신라 시대 이후의 향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 거문고ㆍ가야금ㆍ비파와 대금(大笒)ㆍ중금(中笒)ㆍ소금(小笒) 따위이다. 우리말샘

주11

송방송, 『한국음악통사』, 일조각, 2006, 48p

주12

장사훈, 『한국악기대관』, 한국국악학회, 1969.

주13

당피리, 향피리, 세피리 따위의 피리와 태평소에서처럼 두 겹으로 된 서. 피리는 대나무 껍질을 깎아 구리철사로 감고, 태평소는 갈대를 잘라 한쪽을 실로 잘록하게 감아 쓴다. 우리말샘

주14

이혜구, 『신역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주15

일상생활을 통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배도록 가르치다. 입으로 전하여 주고 마음으로 가르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말샘

주16

장사훈, 『국악총론』, 세광음악출판사, 1985, 223p

주17

소금(小笒)이나 퉁소 따위에 뚫은 구멍. 우리말샘

주18

태평소와 같이 겹리드를 가진 관악기. 오보에 모양으로, 아홉 개까지 지공(指孔)을 가질 수 있다. 특별한 라가의 음계에 좋은 튜닝을 주기 위해 밀랍으로 구멍을 막아 음을 조정하기도 한다. ⇒규범 표기는 미확정이다. 우리말샘

주19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사흘 동안 시험관과 선배 급제자와 친척을 방문하던 일. 우리말샘

주20

이숙희, 『조선후기 군영악대』, 태학사, 2007.

주21

서양에서 발생하여 발달한 음악. 오페라, 오페레타, 오케스트라, 실내악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22

조선 시대의 장악원이 일제 강점기에서 격하되어 만들어진 기관. 1915년에 이 명칭으로 바뀌어 1946년까지 사용되었다. 해방 후 국립국악원으로 계승되었다. 우리말샘

주23

성기련, 「이왕직 아악부원 양성소의 음악교육 연구」, 『동양음악』 26권, 2004, 141p

주24

예전에, 연회 때 상을 받기 전에 연주하던 음악. 피리, 저, 해금, 장구, 북으로 연주했으며, 주로 가곡ㆍ가사ㆍ시조 따위를 불렀다. 우리말샘

주25

진윤경, 「20세기 삼현육각 음악의 전승 연구 : ≪관악영산회상≫·≪취타≫·≪자진한잎≫의 피리 선율을 중심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 논문, 119p

주26

박형섭,「조선민족악기」,『조선민족악기총서』,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4, 94p

집필자
진윤경(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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