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악은 아정(雅正)한 음악이다. 음악이 사람에 미치는 영항을 정성(正聲)과 간성(姦聲)으로 구분할 때, 아악은 음악(淫樂), 사악(邪樂)과 대비되는 음악으로 정의되어 왔다. 중국 고대 주 시대의 유교 의례 음악을 아악이라 하였으며, 음악 양식 면에서 아악은 궁중의 향악, 당악과 차별화된 악기 편성과 선율 진행, 연행 방식을 갖춘 고유의 음악 갈래로 고려 예종 때에 중국에서 수용되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의 궁중음악을 아악이라 일컬었고, 이의 연장선상에서 궁중음악을 ‘아악’으로 통칭하는 관행이 있었다.
아악은 중국 고대에 형성된 음악의 하나로 주6을 갖춘 아정한 음악을 뜻한다. 주 시대에 군주의 통치에 걸맞는 유교식 음악 연주 제도가 정립되었으며, 낙이불음(樂而不淫), 주7, 주8 한 대악(大樂)으로 정의되었다. 주 시대 이후 아악은 군주의 바른 통치와 교화를 드러내는 궁중 주10 음악으로 전승되었으며, 이는 인접 국가에 전파되어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타이완, 베트남에서도 아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아악의 범주와 음악적 내용은 차이가 있다. 일본에서는 민간 음악인 속악에 반대되는 궁중 음악을 아악으로 통칭하며, 아악의 범주에는 701년에 설치된 ‘아악료(雅樂寮)’에서 전해온 주11과 외래 음악인 당악(唐樂), 삼한악(三韓樂), 기악(伎樂) 등이 포함될 주2 우리나라의 문묘제례악과 같은 아악 양식의 음악 전통은 없다.
아악을 궁중음악의 의미로 사용한 예는 우리나라에서도 있다.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조선의 궁중음악 기관 명칭이 일본식으로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로 바뀌었고, 아악부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아악’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궁중음악을 ‘아악’으로 부르는 관행이 주3 역사적으로 아악은 넓은 의미로 유교 궁중 의례에 사용되는 아정한 음악을 뜻하며 좁은 의미로 궁중음악 범주의 향악, 당악과 구분되는 고유한 형식과 연주 형태를 지닌 고대 전래 음악 갈래의 명칭을 뜻한다.
우리나라에는 1,116년 고려 예종 때에 북송 주13의 외교적 선물 형식으로 전래되었다. 고려에 수용된 이후 아악은 제례와 조정 의식(朝庭儀式)에 사용되었는데, 아악 연주 제도가 고려에 정착하기도 전에 국내의 정치 상황과 주14에 의한 국정 혼란이 심화되면서 아악의 악기 편성과 연주에 따른 춤의 변화 등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고려 말에 명(明)과의 교류를 통해 아악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나 큰 성과 없이 조선으로 주4 고려시대의 아악의 용도 및 연주는 『고려사』 「예지」와 「악지」에서 살필 수 있다.
조선 세종 때에는 고려의 아악이 미비하다는 인식하에 중국 주대의 주16을 회복하고자 문헌 조사 및 악론 연구, 기본음 제정, 악기 제작, 악보 선정 작업을 추진하면서 1430년(세종 12)에 조선의 신제 아악(新制雅樂)을 완성하였다. 『세종실록』 「악보」에는 제례에 사용할 아악 144곡과 주17에 사용할 아악 322곡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당시 아악 정비 작업에 참고한 원대의 법전인 『지정 주19에 실린 석전악(釋奠樂)과 주20 임우(林宇)의 주21를 참고하여 정한 제례악과 주자(朱子)의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에 실린 「풍아십이시보(風雅十二詩譜)」를 참고하여 정한 의례 및 연향을 위한 아악곡이다. 세종조에는 참고한 원전의 악곡을 그대로 차용하지 않고 악론 연구를 바탕으로 『율려신서(律呂新書)』의 이론 체계에 따라 조선식으로 바꾼 주1
이렇게 제정된 조선의 신제 아악은 새로운 수요가 발생했을 때 언제든 새로운 가사와 결합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되었다. 예를 들면 주22와 주23, 주24에서 아악을 연주할 「융안지악(隆安之樂)」, 「서안지악(舒安之樂)」, 「휴안지악(休安之樂)」, 「문명지곡(文明之曲)」, 「무열지곡(武烈之曲)」, 「수보록지악(受寶籙之樂)」, 주25, 주26, 「수명명지악(受明命之樂)」의 가사에 아악 선율을 적용할 때 주악 계기에 따라 「신제아악보」의 선율을 선별해서 주5
아악 정비 이후 아악은 국가의 대사 · 중사의 제례 및 조회 및 연향에서 연주되다가 1464년(세조 10) 이후로는 종묘를 제외한 풍운뇌우 · 사직 · 문묘 · 선농 · 선잠 제사에 주로 쓰였고, 조회 및 연향에서는 아악을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1704년(숙종 30)부터 새로 시행된 황단제(皇壇祭)와 황제국을 표방하면서 회복된 원구제(圜丘祭)에 아악이 연주되었고, 연향에서는 1743년(영조 19)과 1765년(영조 41)에 세종 때 정비된 아악이 사용된 예가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문묘 주27 외의 국가 제례가 폐지됨에 따라 아악은 문묘 제례를 통해서만 전승되었고, 제례 의식과 별개로 국립국악원 주28의 하나로 악무가 연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재현된 사직 주29에서도 아악을 연주한다.
우리나라의 아악 연주 규범과 악장은 『악학궤범』에, 악곡은 『세종실록』 「악보」 및 『악학궤범』에 전하며, 악무는 조선시대의 국가음악기관인 장악원 및 일제강점기의 이왕직 아악부, 현대의 국립국악원을 통해 전승되고 있다.
아악은 악곡의 형식과 연주 형태가 특정된 고유한 음악 양식을 갖춘 음악 갈래다. 아악은 삼분손익법(三分損益法)으로 산출한 고정 진동수를 가진 12율이 있고, 12율은 주37인 주30 · 주31 · 주32 · 주33 · 주34 · 주35과 주36인 주38 · 주39 · 주40 · 주41 · 주42 · 주43으로 구분된다. 양률과 음려는 아악을 연주할 때 12월을 양과 음으로 구분하여 주44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고, 주45와 주46 악대에 각각 음려와 양률을 적용하는 원칙으로도 사용되었다. 즉, 양률은 주47에, 음려는 주48에 각각 기음(起音), 즉 시작하고 끝내는 음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아악을 연주할 때는 해당 악곡의 ‘조(調)’가 지정되어 있어 용도에 따라 조가 결정된다. 예를 들면 군왕의 악조, 왕세자의 악조가 달리 적용되고, 제사에서는 대상에 따라 천 · 지 · 인(天 · 地 · 주49의 악조가 구별되며, 신을 맞이할 때(迎神)의 음악, 보낼 때(送神)의 음악도 조가 다르다. 또, ‘기조필곡(起調畢曲)’이라는 원칙에 따라 악곡은 반드시 시작한 음으로 끝내는 원칙이 있다.
아악은 보통 가사가 있는 노래와 악기 연주, 춤을 동반한 악무 형태로 연행된다. 노랫말은 한문시 4언 1구, 4구 1장으로 된 정형시로서 글자마다 음이 한 개씩 붙는 일자일음(一字一音) 식의 단순한 형태의 선율로 이루어져 있고, 연주 속도는 완만하다.
아악의 악기 연주는 특별하게 편성된 2개의 주50, 등가와 헌가로 구성된다. 아악의 악대 편성(악현)은 악기의 소리가 8가지 자연 재료를 구비해야 한다는 조건이 중요하다. 8가지 자연 재료란 고대로부터 ‘팔음’으로 규정되어 온 금(金) · 석(石) · 사(絲) · 죽(竹) · 포(匏) · 토(土) · 혁(革) · 목(木) 등 각각의 재료로 만든 악기들이 있으며, 이 악기들은 일정한 원칙에 따라 단수, 혹은 복수로 편성된다. 조선 전기 아악 연주에 사용된 팔음 악기는 주51에 특종(特鐘) · 편종(編鐘) · 순(錞) · 탁(鐲) · 요(鐃) · 탁(鐸), 주52에 특경(特磬) · 편경(編磬), 주53에 금(琴) · 슬(瑟), 주54에 소(簫) · 약(籥) · 관(管) · 적(篴) · 지(篪) · 독(牘), 주55에 주56 · 주57 · 주58, 주59에 훈(塤) · 부(缶), 주60에 뇌고(雷鼓) · 영고(靈鼓) · 노고(路鼓) · 뇌도(雷鼗) · 영도(靈鼗) · 노도(路鼗) · 진고(晋鼓) · 절고(節鼓) · 건고(建鼓) · 응고(應鼓) · 삭고(朔鼓) · 아(雅) · 상(相), 주61에 축(柷) · 어(敔) · 응(應)이 편성되어 있었다. 이후 아악 연주에 편성된 악기의 종류와 수는 시대 마다 변화를 겼었다.
한편, 아악 편성의 주요 악기인 편종과 편경은 연주를 하는 계기와 대상에 따라 등급을 달리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주62의 예에는 편종과 편경을 악대의 4방향에 각각 3틀씩 배치하고, 주63의 예에는 3방향에 각각 3틀씩 배치하는 식이다. 또 타악기 중 일부는 제례의 대상에 따라 북의 면수와 색을 구분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천신 제례에는 북통에 검은색을 칠한 북 6개를 매단 뇌고와 뇌도를, 주64를 위한 제례에서는 북통에 노랑색을 칠한 북 8개를 매달고, 주65를 위한 제례에서는 붉은색을 칠한 북 4개를 매달고 친다. 이러한 연주 규범은 악기의 소리가 천지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매개이며, 차등을 통한 예의와 질서를 구현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아악의 주요 구성 요소인 춤은 문무(文舞)와 무무(武舞), 2가지 주제로 여러 명의 무용수들이 줄을 맞춰 춤을 추게 되는데 이를 일무(佾舞)라고 한다. 문무와 무무는 규격에 맞는 고유한 복식과 의물이 있었으며, 춤추는 인원도 계기에 따라 차등이 있다. 천자의 예에는 8줄로 추는 춤( 팔일무을, 제후의 예에는 6줄로 추는 춤(육일무)를 추는 원칙이다. 이와 같은 아악의 주악 원칙은 대부분 주대에 완성되어 전승된 것이며 조선에서는 육일무를, 대한제국에서는 팔일무를 추다가 일제강점기에는 다시 육일무를 췄다. 현재는 팔일무를 춘다. 문무를 출 때는 무원이 머리에 개책관을 쓰고, 왼손에는 ‘약(籥)’, 오른손에는 ‘적(翟)’을 들고, 무무를 출 때는 무원이 머리에 피변을 쓰고 왼손에는 간(干), 오른손에는 도끼[戚]를 들고 춘다.
아악은 중국 주대에 연원을 둔 고대 음악 양식으로 유교의 통치 질서에 걸맞은 주악 제도와 규범을 갖추고 전해온 고전 음악이다, 음악이 사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아정한 음악이자, 예와 악의 질서를 주요 통치 수단으로 삼았던 유교 국가의 궁중 의례 음악 전통으로서 고대인의 음악 생각이 구현된 연주 양식을 보유한 음악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인문적 가치가 높다. 12세기 초반에 아악을 수용한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세종 때의 혁신적인 아악 정비를 거친 ‘신제 아악’의 전통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절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인접 국가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역사적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