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1682년(숙종 8) 종묘 영녕전에 쓸 방향(方響)을 만들려고 처음 설립하였고, 1710년 전정헌가(殿庭軒架)의 편종과 편경의 제작을 위해서 다시 설치하였다.
1744년(영조 20)창덕궁(昌德宮)의 화재로 타버린 악기를 다시 만들려고 인정전(仁政殿) 악기조성청이 설치되었는데, 이 때 편종 2틀, 편경 2틀, 어(敔)·축(柷)·건고(建鼓)·응고(應鼓)·삭고(朔鼓) 각 1개씩 제작하였다.
1776년(정조 즉위년)에는 경모궁(敬慕宮) 악기조성청이 설립되어 여러 가지 악기가 많이 제작되었는데, 이 때 신득린(申得麟)과 임성주(林成柱)가 감조전악(監造典樂)으로 활약하였다.
그 뒤 1803년(순조 3)사직고(社稷庫)의 화재로 인하여 새로 악기를 만들려고 사직악기조성청이 설치되었으며, 이때 신광삼(申光三)·김응삼(金應三)·박보완(朴輔完)이 감조전악으로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