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종류의 하나. 우리 나라에는 이미 신라시대 삼현(三絃)·삼죽(三竹)·박판(拍板)과 더불어 대고(大鼓)가 있었고, 1114년(예종 9) 송나라에서 신악기(新樂器)가 들어왔을 때 방향(方響) 등과 함께 대고 1면(面)이 끼어 있었다.
이름 그대로 큰북이었던 것은 이 때 장구가 20면이나 왔는데 대고는 겨우 1면뿐인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에 전래된 대고는 큰 독 모양의 대고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1430년(세종 12) 박연(朴堧)의 상소에 “이제 아악(雅樂)의 대고는 이 북(현고, 진고)을 모방하여 만든 것인 듯하다.”고 말한 점으로 보아 분명하다. 대고와 진고(晉鼓)는 거의 비슷한 모양의 악기로 서로 혼동하여 사용되어왔다.
그러기에 현행 종묘 제의에서 아헌(亞獻)을 시작할 때 먼저 진고 10통(通)을 치고 음악이 시작되는 것과, 성종 때 향악정재(鄕樂呈才) 정대업(定大業)을 추기에 앞서 대고 10통을 치면 음악이 소무(昭武)를 연주하는 절차에서도 대고와 진고는 같은 계열의 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전통적인 대고는 전하지 않으며, 1960년대 국립국악원에서 제작한 대형 좌고를 대고라고 부르고 있다. 한편,『악학궤범』에 의하면 정대업정재에서 의물(儀物)로 사용된 대고는 크기가 훨씬 작고 고리에는 줄을 달았다.
고(鼓)는 쇠가죽을 쓰고, 나무로 북통을 만들어 그 통을 칠포(漆布)로 싸고 붉은 칠을 한 다음 모란을 그렸다. 두정(頭釘)과 고리(圓環)에는 모두 도금하고 홍색 명주실로 만든 영자(纓子)를 달았으나, 제향에 쓰는 것은 도금하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