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원숙(元淑). 아버지는 첨사 허수(許秀)이다. 효성이 지극하고 담용(膽勇)이 뛰어나 어릴 때부터 말달리기와 칼쓰기를 좋아하였다.
27세 때 무과에 응시하였는데, 과규(科規)에는 합격하였으나, 방(榜)에는 누락되어 있어 방방(放榜)하던 날 억울한 사정을 왕에게 호소하기 위하여 궁중에 뛰어들어갔다가 위사(衛士)에게 붙잡혀 전옥(典獄)에 갇혔다.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나와 큰 소리로 억울함을 합외(閤外)에서 호소하니, 그 소리가 왕이 거처하는 대내(大內)에까지 들려 왕이 그에게 까닭을 묻고는 그 기백이 장하다 하여 급제를 내리고, 충장장(忠壯將)을 제수하였다.
1811년(순조 11)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나자 병환 중임에도 불구하고 분연히 일어나서 반도토벌에 앞장섰다. 이 공으로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오르고 우림장(羽林將)에 임명되었으나 전사하였다. 전공으로 통제사에 추증되었으며, 정려되고 정주의 표절사(表節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