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산문(迦智山門)의 선승(禪僧)이다. 성은 남씨(南氏). 자는 빈빈(彬彬), 호는 월송화상(月松和尙). 고성 출신. 선종인 가지산문에 출가하였다. 30세가 넘어 승과에 급제하였고, 몇 단계의 법계를 거쳐 대선사에 이르렀다.
1232년(고종 19) 전후에 화악사(華嶽寺)에 주석하였고, 몽고의 침략으로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던 1232년 운문사(雲門寺)로 옮겨 3년 동안 머무르다가 1234년에 죽었다. 성품이 강직하여 당대의 사대부들이 그를 좋아하였는데, 이인로(李仁老)·이규보(李奎報)·최종선(崔宗善)·유충기(劉冲基) 등과 교유하였다.
시 짓기를 즐겨 산인체(山人體)를 체득하였는데, 보현사시(普賢寺詩)·천수사시(天壽寺詩)·천룡사시(天龍寺詩)·수다사시(水多寺詩) 등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제자에 담이(湛伊)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