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왕 때 국존(國尊)으로, 유가종의 고승이다. 성은 강씨(康氏). 혜영(惠永)은 이름이다. 경상북도 문경 출신. 한림원 자원(子元)의 아들이다. 11세에 출가하여 남백월산(南白月山)의 수좌(首座) 충연(冲淵)의 제자가 되었고, 17세에 왕륜사(王輪寺) 선불장(選佛場)에 합격하고, 흥덕사(興德寺)에 머물렀다.
1259년(고종 46) 삼중대사(三重大師), 1263년 수좌가 되었다. 1267년(원종 8)속리사(俗離寺)에 이주하였으며, 1269년 승통(僧統)이 되었다. 1274년 통도사에서 사리 여러 매를 얻어 항상 좌우에 두었더니 많은 분신사리(分身舍利)가 생겨났으며, 이를 구하는 사람에게 주었다.
이 해에 중흥사(重興寺)로 옮기고, 왕명에 의하여 9년 동안 서울에 머물렀다. 1285년(충렬왕 11)유가사(瑜伽寺)로 옮겼고, 1290년 사경승(寫經僧) 100명을 데리고 원나라에 들어가 세조를 만나자 경주사(慶州寺)에 머무르게 하였다. 만안사(萬安寺) 당두(堂頭)의 청으로 『인왕경(仁王經)』을 강의하여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이듬해 금니(金泥)로 대장경을 사(寫)하여 귀국하였다. 1292년 국존에 봉해져 보자(普慈)라는 법호를 받았고, 또한 오교도승통(五敎都僧統)이 되어 동화사의 주지를 맡았다.
1294년 1월 미질(微疾)이 있었는데, 24일 단정히 앉아 『화엄경』 십지품(十地品)을 읽다가 입적하였다. 시호는 홍진(弘眞), 탑호(塔號)는 진응(眞應)이다. 문인에는 금산사주지 승통 효도(孝棹) 등이 있다. 저서로 42세 때 유경(柳璥)의 청으로 지은 『백의해(白衣解)』 1권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