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자순(子順), 호는 신재(新齋). 홍중기(洪重箕)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석보(洪錫輔)이고, 아버지는 예조판서 홍상한(洪象漢)이며, 어머니는 어유봉(魚有鳳)의 딸이다. 외할아버지 어유봉으로부터 수학하였다.
1741년(영조 17) 사마시에 합격하고, 1754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57년 정언·사서를 역임하고, 1762년 강동현령, 이듬해 부응교·필선·응교·교리를 지냈다. 1764년 부제학, 이듬해 참판·참의, 1766년에 대사성이 되었다.
1768년 승지, 이듬해 이조참의, 1773년에 대사헌을 지냈다. 정조 즉위년에 강화유수를 거쳐 홍문관부제학이 되고, 1778년(정조 2) 형조판서를 거쳐, 이듬해 병조판서를 지냈다.
정조 초 세도가인 홍국영(洪國榮)이 친척이라 하여 높은 벼슬에 매번 천거하였으나 병을 핑계로 정계에서 물러났다가 1780년홍국영이 실각하자 다시 등용되어 한성부판윤·의정부우참찬이 되었고, 그 뒤에 이조판서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하고 취임하지 않았다.
경사(經史)에 밝고 특히 『소학』을 애독하였으며, 만년에 이황(李滉)과 중국의 한유(韓愈)를 사숙하여 경서와 문장에 침음하였다.
저서로는 『신재문집』 6권과 『소학초록(小學抄錄)』·『경술편(敬述篇)』·『기락편(旣樂編)』·『유은록(儒隱錄)』 등이 있다. 시호는 문청(文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