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국보(國寶), 호는 동호(東湖)·구곡산인(九曲山人)·지리재(支離齋). 아버지는 진사 홍준(洪浚)이며, 이식(李植)의 문인이다.
1645년(인조 23) 생원이 되고, 1650년(효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해주목사가 되고 이어 정평부사, 경서교정관(經書校正官)을 거쳐 1672년부터 평산부사를 역임하였다.
10여세 때부터 글씨를 잘 써서 많은 편액을 썼으며, 효종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에 불러 시험하고 신[靴]을 벗어 하사하였다. 독서에 힘써 천문학에 정통하여 나무로 혼천의(渾天儀)를 만들어 성관(星官)들의 연구에 표본이 되게 하였다.
글씨는 특히 전서를 잘 써서 현종의 격찬을 받았다. 작품으로 「취미대사수초비(翠微大師守初碑)」, 해주의 「정랑박여룡비문(正郎朴汝龍碑文)」, 양근의 「홍윤묘비(洪潤墓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