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1년(공민왕 10) 10월 20만 명의 홍건적이 고려를 침략하자 상원수(上元帥) 안우(安祐)의 지시에 따라 장군으로서 조천주(趙天柱)·정리(鄭履)·장신보(張臣補)·이원계(李元桂)·정선(鄭詵) 등과 함께 보병과 기병 400명을 거느리고 박주(博州)로 진격하여 100여 명의 적을 죽였다.
그러나 11월 전세가 불리해지자 유격장군(遊擊將軍)을 자청하니, 왕이 가상히 여겨 남경윤 양광도 관군 상만호(南京尹楊廣道管軍上萬戶)에 임명되었다. 1363년 윤3월 예의판서(禮儀判書)로서 홍건적의 난 때 개경을 수복한 공으로 경성수복1등공신(京城收復一等功臣)에 봉해졌다.
최유(崔濡)가 왕을 폐하고 덕흥군 왕혜(德興君 王譓)를 옹립하여 고려를 친다는 정보가 있자, 이 해 5월 도병마사에 임명되어 정주(靜州)에 주둔, 동북을 방비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최유가 거느린 원나라 군대에게 의주가 포위되어 적병과 싸우다가 포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