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계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양광도도순문사, 강계원수, 이성원수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390년(공양왕 2)
주요 관직
이성원수(泥城元帥)
관련 사건
윤이(尹彛)·이초(李初)의 옥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고려후기 양광도도순문사, 강계원수, 이성원수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판사(判事)로 재직 중 1365년(공민왕 14) 6월 신돈(辛旽)이 사부(師傅)가 되어 국정을 장악하고 최영(崔瑩) 등 구세력을 축출할 때, 순흥(順興)에 귀양갔다.

1370년 요성(遼城)을 공략할 때 원수 지용수(池龍壽)의 비장(裨將)으로서 최공철(崔公哲) 등과 함께 기병 3,000명으로 출정하였다. 1376년(우왕 2) 10월 양광도도순문사(楊廣道都巡問使)가 되어 진포(鎭浦)의 왜구를 격퇴하고, 다음해 2월에도 신평현(新平縣)에 쳐들어온 왜적들을 물리쳤다.

1380년 2월 강계원수가 되었으며, 8월에는 500척의 왜선이 진포에 정박하여 하삼도(下三道)를 침략하므로, 상의(商議)로서 원수가 되어 양광전라경상삼도도순찰사 이성계(李成桂)의 지휘를 받아 운봉현(雲峯縣) 황산에서 적을 궤멸시켰다.

1388년 5월 요동정벌 때에는 이성원수(泥城元帥)로서 참가하여 강계원수 이의(李薿)와 먼저 요동경계에 쳐들어갔다가 회군하였다. 1390년(공양왕 2) 5월 명나라에서 돌아온 조반(趙胖)에 의하여 보고된 윤이(尹彛)·이초(李初)의 고변에 연루되어 순군옥(巡軍獄)에 갇혀 옥사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