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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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근대사
인물
대한제국기 중추원의관을 지낸 정치인이자 사회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경력
사헌부장령|중추원의관|만민공동회 청년 연사
내용 요약

홍정후는 대한제국기 중추원의관을 지낸 정치인이자 독립협회 회원이다. 1898년 만민공동회 청년 연사로 한로은행(韓露銀行) 내막을 폭로하고 재정 고문과 군사 교관의 부당성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였다. 중추원 관제개혁 때는 독립협회 대표의 한 사람으로 중추원의관이 되었다.

목차
정의
대한제국기 중추원의관을 지낸 정치인이자 사회운동가.
생애 및 활동 사항

1872년(고종 9)에 주1에 합격하고, 이듬해 주2(弘文館副修撰), 1876년 주3(司憲府掌令) 등을 지냈다. 이상재(李商在) · 서재필(徐載弼) 등과 함께 독립협회에서 활약하였는데, 1897년에는 독립협회 제4대 임원 구성에서 평의원을 맡았다.

1898년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가 열리자 청년 연사로 이승만(李承晩)과 함께 당시의 한로은행(韓露銀行) 내막을 폭로하고 재정 고문과 군사 교관의 부당성을 지적, 규탄하는 연설을 하여 여론을 일으켰다. 그 뒤 황국협회(皇國協會)와 충돌하여 한때 투옥되기도 하였으며, 중추원 관제개혁 때는 독립협회 대표의 한 사람으로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이 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고종실록(高宗實錄)』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

단행본

국사편찬위원회 편, 『신편한국사』 41(국사편찬위원회, 2002)

인터넷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승정원일기(https://sjw.history.go.kr/main.do)
주석
주1

조선시대에, 복시(覆試)에서 선발된 사람에게 임금이 친히 치르게 하던 과거. 문과 33명, 무과 28명의 합격자를 재시험하여 등급을 결정하였는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떨어뜨리는 법은 없었다.    우리말샘

주2

조선시대에, 홍문관에 속하여 경적(經籍)과 문한(文翰)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종육품 벼슬.    우리말샘

주3

감찰 업무를 담당하던 관직

집필자
김헌주(연세대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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