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누각 맞배지붕 건물. 같은 경내에 있는 극락전과 내정을 사이에 두고 남북축선상에 놓여 있으며, 사찰 전방에 일반적으로 놓이는 누각건물 형식의 건물이다.
지층(地層)에는 기둥을 세워서 외부와 통하게 하고, 뒤쪽에는 축대에 맞추어 2층 마룻바닥이 내정의 지반과 거의 같게 놓여, 건물의 전방에서는 2층이지만 내정쪽에서는 단층집으로 보이게 하였다. 공포는 내외 삼출목(三出目) 다포계의 집이다.
내부에는 남쪽에만 고주 2개를 세우고 있고, 이 고주 위에서 대량(大樑)을 받아 한쪽에는 짧은 툇보[退樑]를 보내고 있어서, 대량이 길어지는 것을 막아주고 있다. 대량 위에서는 높은 포대공을 짜올려 이 위에 또 종보를 올리고 종보 중앙에서 다시 높은 판대공을 올려 종마루를 받들고 있다.
이 건물은 특히 대량과 종량 높이에 차이를 많이 두어 그 사이에 높은 화반[花盤 : 주심도리 및 장여를 받는 초새김한 받침]을 장식하는 특수한 구조를 하고 있는데, 이는 도리 수를 줄이고(5량) 지붕 물매를 맞추고자 함이다.
공포 쇠서[牛舌]의 외부쪽은 끝이 밑으로 처지면서 약간 뾰족해지는 조선 초기 · 중기 형식을 취하고 내부로는 당초문이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건물 외부로 보아 누상 남면에는 판벽을 막아 각 칸 사이의 중앙에 판문을 달았고, 양쪽을 판벽으로 막고 북쪽은 벽 없이 통하여 극락전을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1981년 보수할 때 나온 상량문에는, 성달생(成達生)이 중창한 이래 1711년(숙종 37)까지 여섯 차례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건축양식에 있어서 극락전과 비슷한 점을 보이고 있어 조선시대의 건물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