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약수(若水). 당시 시주(詩酒)로 종유(從遊)하던 죽림고회(竹林高會) 7인 중의 한 사람이다. 특히, 임춘(林椿)과 친교가 깊어서 임춘이 그에게 남긴 서한이 전해지고 있다.
그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 대체로 임춘의 편지내용으로 추측할 뿐이다. 임춘보다는 상당히 연하였으며, 대대로 문한(文翰)을 세업(世業)으로 하던 귀족가문의 출신이었다.
박학다식하고 문사(文辭)에 능하여 1176년(명종 6) 승보시(升補試)에 수석으로 급제하였다. 그러나 벼슬은 단지 중원서기(中原書記)를 역임하였을 뿐이니, 임춘이 그의 말직에의 부임을 위로하는 시를 보내주었다.
죽림고회의 인물들이 다 그러하였듯이 자기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은 컸으나 사회현실에 크게 쓰이지 못하였으므로 큰 불만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악장(樂章)에 능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