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자후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한성부윤, 중추원부사, 동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선양(善養)
시호
혜의(惠懿)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363년(공민왕 12)
사망 연도
1440년(세종 22)
본관
회덕(懷德, 지금의 대전광역시 회덕)
주요 관직
한성부윤|중추원부사|동지중추원사
정의
조선 전기에, 한성부윤, 중추원부사, 동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회덕(懷德). 자는 선양(善養).

생애 및 활동사항

음서로 출사하였다. 태종 초에 성주목사를 거쳐 1412년(태종 12) 인녕부사윤(仁寧府司尹)을 지내고, 이듬해 형조좌참의가 되어 호패법(戶牌法)의 제정을 건의하였다. 1414년 호조참의·경기도관찰사·개성유후사부유후를 역임하였다.

이듬해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공안부윤(恭安府尹)이 되어 동전의 사용을 건의하였다. 1416년 가짜 약재 구입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전의감제조로서 여기에 연루되어 귀양갔다가 두 달 만에 풀려났다.

1421년(세종 3) 좌군총제(左軍摠制)가 되어 정조사(正朝使)의 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22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어 환자미(還上米)를 함부로 준 죄로 귀양갔다가, 이듬해 풀려나 나주목사에 임명되었다. 그 뒤 여러 해 관직에서 떠났던 것으로 보인다.

1431년 한성부윤을 거쳐 이듬해 중추원부사가 되고, 1436년 동지중추원사, 이듬해 중추원사에 제수되었다. 이무렵 침구(鍼灸)의 전문직을 둘 것을 건의하였다. 1438년 노령으로 은퇴하였다. 의약(醫藥)에 정통하여 항상 전의감의 제조를 맡았다. 시호는 혜의(惠懿)이다.

참고문헌

『태종실록(太宗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집필자
권연웅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