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의 칙사(勅使)가 왔을 때에 벌였던 연회(宴會)에 관한 기록을 예조(禮曹)전향사(典享司)에서 기록한 등록으로, 상책(上冊)에는 1636년(인조 14)부터 1680년(숙종 6)까지, 하책(下冊)에는 1681년(숙종 7)부터 1724년(경종 4)까지의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예조의 전향사(典享司)에서 청나라에서 사신이 왔을 때 벌였던 연회를 보고하기 위해 만든 사후 보고서이다.
책의 크기는 40.2×26.2cm이며, 필사본이다.
『칙사연례등록(勅使宴禮謄錄)』에 기록되어 있는 기간은 1636년부터 1724년까지 약 90여년에 이르나 실제로는 38년 치의 기록이 있을 뿐이다.
청나라의 칙사가 조선에 들어와 한양까지 오는 도중에 해당 읍, 예를 들어 의주와 평양, 황주, 개성 등지에서 베푸는 연회(宴會)의 준비 상황과, 다례(茶禮)․하마연(下馬宴)․친임연(親臨宴), 그리고 왕세자가 별도로 베풀었던 연회 등 한양에서 벌였던 여러 종류의 연회 준비과정이 사신(使臣)의 일정에 따라 수록되어 있다.
조선이 청나라 사신을 맞이해서 보내는 절차의 대략을 살펴보면, 청의 사신은 의주에서 맞으며, 칙서를 받고, 사신이 서울에 도착하는 날에는 왕을 비롯한 종친과 문무백관은 모화관에 나가서 칙사를 맞는다. 한양에 입성한 다음날 하마연을 베풀고, 다음날에는 익일연을 한다. 그리고 인정전에서 초청연을 베풀고 그 다음에 회례연, 별연, 상마연을 베풀게 된다.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왕세자나 종친부, 의정부, 육조 등도 잔치를 베풀기도 하였다.
그리고 연회의 성격은 대체로 다례로 진행되는데, 이때의 다례는 중국사신을 위한 접빈다례로, 차와 과반이 소요되며, 이 외에 악공과 무동을 내세운 진연을 벌이기도 한다.
『칙사연례등록』을 편(編)한 전향사에서는 연회의 택일(擇日) 등 전체적인 계획을 세워 이를 관련 관청에 통보하였다. 그리고 연회를 위한 복색(服色)을 준비하고 음식을 마련하는 등의 세부적인 준비는 영접도감(迎接都監)이나 사향원(司饔院) 등 주무부서에 알려 준비하게 하였음을 볼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국왕에게 보고되는 계(啓)와 단자(單子) 및 관련 관청간의 관문(關文)등을 수록하였다.
칙사연례는 조선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던 의례이며, 『조선왕조실록』과 『악장등록』에서 볼 수 없었던 칙사를 위한 연회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어, 궁중연례음악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