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학자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 1534∼1599), 우계(牛溪) 성혼(成渾, 1535∼1598),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 사이에 왕래한 편지를 모아 후대에 제작한 4첩(帖)의 편지 모음집이다. 이 3인은 16세기 성리학의 대가들로서 편지의 내용은 일상사를 비롯하여 이기(理氣)·심성(心性)·사단(四端)·예론(禮論) 등에 관한 진지한 학문 토론 및 처세 등에 관련된 서간들이 많다.
편지가 왕래된 시기는 1560년부터 1593년까지로, 3인이 20대 중반부터 서신 왕래를 시작하여 35년이란 긴 세월을 두고 교유한 기록들이다.
2004년 8월 31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리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송익필이 1599년(선조 32)에 쓴 서문을 보면, “나는 우계 성혼, 율곡 이이와 가장 친하게 지냈다. … 아들 취대(就大)가 지난 전쟁으로 두 친구의 글이 흩어지고 없어졌지만, 남아 있는 나머지의 두 친구의 편지와 내가 답장한 글, 그리고 잡다한 기록들을 약간 모아서 나에게 보여 주었다. 모두 모아서 책으로 만들고, 죽기 이전에 보고 느끼는 자료로 삼기로 하였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수간은 성혼과 이이가 송익필에게 보낸 편지와 자신의 답장을 아들 송취대가 모아서 정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서간의 원본 크기는 가로 27㎝, 세로 37.5㎝이고, 원첩(元帖) 23통, 형첩(亨帖) 26통, 이첩(利帖) 26통, 정첩(貞帖) 23통으로 총 98통을 수록하고 있다.
구봉이 우계와 율곡에게 보낸 편지 각각 20통과 7통, 우계가 구봉에게 보낸 편지 49통, 율곡이 구봉에게 보낸 편지 13통, 기타 구봉이 김장생과 허공택 등에게 보낸 편지 9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송익필의 문집인 『구봉선생집(龜峯先生集)』 권4와 권5의 「현승편(玄繩編)」에는 본 편지의 일부가 실려 있는데, 이로 보아 이 서간첩의 원 제목은 ‘현승편’이었는데, 후대에 ‘삼현수간’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우계와 율곡의 편지 내용도 역시 『우계집(牛溪集)』과 『율곡전서(栗谷全書)』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여기에서 누락되거나 중간에 빠진 부분은 이 서간첩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세 사람의 편지 중 문집에 실리지 않은 것은 16통이며, 일부만 실려 있는 것은 15통이다. 각 면에는 ‘황강사계창주고가(黃岡沙溪滄洲古家)’라는 인문(印文)이 찍혀 있는데, 황강은 사계 김장생의 아버지 김계휘(金繼輝)의 호이며, 창주는 사계의 손자인 김익희(金益熙)의 호이다.
따라서 어떤 계기로 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이와 송익필의 제자인 사계 김장생의 집안으로 이 서첩의 소유자가 바뀌었고, 그 이후부터 사계 집안에서 대대로 수장해 온 것이다.
이 편지글은 성리학의 대가인 3인이 친필로 쓴 것들이므로 그 글씨만으로도 서예사적으로 큰 가치를 지니며, 이기(理氣)·심성(心性)·사단(四端)·예론(禮論) 등 성리학에 관하여 토론한 것들이 많아 사상사적·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구봉의 초서(草書)는 한 자도 흐트러짐이 없이 정연하면서 기운이 넘쳐흐르며, 율곡의 친필 글씨는 현전하는 것이 희귀하여 이 책의 중요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