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문절공유사 목판 ( )

출판
유물
국가유산
고려말의 학자인 문절공 차원부의 유문(遺文) 등을 엮은 실기의 목판.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차문절공유사목판(車文節公遺事木板)
분류
기록유산/서각류/목판각류/판목류
지정기관
전라남도
종목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유산(1995년 07월 05일 지정)
소재지
전라남도 광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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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말의 학자인 문절공 차원부의 유문(遺文) 등을 엮은 실기의 목판.
개설

차원부(車原頫, 1320∼1407)의 본관은 연안(延安)으로, 고려 말기에 간의대부를 지냈고 정몽주(鄭夢周) · 이색(李穡) 등과 함께 명성을 떨쳤던 유학자이다. 조선 건국 후 부름을 받았으나 협조하지 않다가 미움을 받아 일가족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차문절공유사』는 1708년(숙종 34)에 황해도 평산에서 처음으로 간행되었고, 이후 1768년(영조 44)에 경상도 김천에서, 1781년(정조 5)에 황해도 서흥에서, 1791년(정조 15)에 운각에서, 1915년에 차석주(車錫周)의 개편 등 모두 5차례 간행되었다. 이 목판은 1791년 국가의 인쇄기관인 운각(芸閣), 즉 교서관(校書館)에서 판각한 4번째의 판본으로 총 53판이다.

처음에는 순천시 주암면 선평리 오천서원(鷔川書院)에 소장되어 있다가 1868년(고종 5) 서원이 훼철되자 1897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연안차씨 문중에서 구암별묘(龜巖別廟)라는 재실을 만들어 보관하였다. 이후 여수비행장 확장으로 이 별묘마저 철거되자 현재는 광양시 옥룡면 죽천리 연안차씨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1999년 7월 5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서지적 사항

목판의 전체 크기는 대략 가로 47㎝, 세로 22.5㎝이다. 변란은 사주단변이며, 반곽의 크기는 가로 14.5㎝, 세로 22㎝이다. 반면은 10행, 1행에 20자씩 배자되어 있다. 권두서명은 ‘車文節公遺事(차문절공유사)’이며, 그 아래로 ‘上篇(상편)’이라는 권수 표시가 있다. 판심부에는 상어미 위에 ‘車文節公遺事(차문절공유사)’라는 판심서명이 보이고, 그 아래로 권수(卷數)와 장수(張數)가 표시되어 있다. 어미는 상하향의 이엽화문어미 형식이다.

내용

권두에 박종악(朴宗岳)의 구서(舊序), 권말에 이복원(李福源)의 후서(後序)와 홍양호(洪良浩)의 발문이 있다. 상권은 유고(遺稿)로 시 2수, 다음에 설원록(雪冤錄)으로, 1455년(세조 1) 하위지(河緯地)가 쓴 서 1편, 기 1편, 응제시(應制詩) 61수, 끝에 최현의 발문 1편이 실려 있다. 하권은 세계도 · 기실(紀實) 각 1편, 설원록에 관계된 제공성씨(諸公姓氏) 1편이 있다. 부록으로 행장 · 사실 각 1편, 추술집록(追述輯錄) 20수, 축문 · 상량문 · 봉안제문 각 1편으로 구성되었다. 이 가운데 유고에 시는 2수밖에 없으나, 시운이 청아하고 수연한 기상이 있어 그의 시풍을 짐작하게 한다.

설원록은 차원부가 고려말의 유신으로 절의를 지켜 조선이 개국한 뒤 벼슬에 나가지 않다가, 죽임을 당하였는데, 뒤에 억울한 사실이 밝혀져서 세조가 신원시켜 주고 문절(文節)이라는 시호까지 내렸다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응제시는 세조의 명에 따라 신하들이 문절공의 행적을 예찬하여 지은 글이다.

특징

이 목판은 『차문절공유사』의 5차례의 판각 중 국가기관인 운각에서 판각한 것으로, 당시 서적 인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 목판은 국가에서 판각을 명령하여 국가기관에서 간행한 것으로 결판이 없고 보존상태도 좋아 서지학 및 인쇄사적으로 가치가 크다.

참고문헌

『차문절공유사』
『전남서원의 목판』(송일기 외, 전남대학교문헌정보연구소·전라남도, 1998)
『전남권문집해제』1·2(전남대학교인문과학연구소, 1997)
「차문절공유사목판」(송일기, 『전남향토문화백과사전』, 전라남도·전남대학교호남문화연구소, 2002)
집필자
김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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