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회요』는 조선 중기의 문신 · 학자 강항(姜沆, 1567∼1618)이 중국의 역사서인 『자치통감(資治通鑑)』과 『통감강목(通鑑綱目)』 등을 보완하여 정리한 사서(史書)이다. 강항은 1593년(선조 26) 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 정자, 공조와 형조의 좌랑 등을 지냈다. 정유재란 때 왜적의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일본에 성리학을 전파하고, 귀국 후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하였다. 사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이 목판은 총 642판으로, 1702년(숙종 28)에 판각된 것으로 보인다. 1999년 7월 5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어 내산서원에 소장되어 있다. 처음에는 영암군 도갑사(道岬寺)에서 판각하여 읍내의 녹동서원(鹿洞書院)으로 이관하였는데, 이 서원이 훼철되자 덕진면 영보리 장판각에 보관하다가 1979년 내산서원으로 옮겼다. 내산서원은 1635년(인조 13) 용계사(龍溪祠)라는 이름으로 사액된 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었다가 1974년 현위치에 복원한 서원이다. 주위에 강항의 묘소와 동상이 있다.
『강감회요』는 모두 17권으로 각 권마다 상 · 하 2권으로 나누어져 있다. 주요 내용은 강목(綱目)과 같이 주(周) · 한(漢) · 진(晉) · 남북조(南北朝) · 수(隋) · 당(唐) · 오대사(五代史)로 편성되어 있다. 첫머리에 강항의 제자 윤순거(尹舜擧)가 1667년(현종 8)에 쓴 서문이 있다.
목판의 전체 크기는 가로 50.5㎝, 세로 22㎝이다. 변란은 사주단변이며, 반곽의 크기는 가로 16㎝, 세로 20.2㎝이다. 판면은 계선이 보이고 있고, 반면은 12행으로 1행에는 22자가 배자되어 있다. 판심부에 서명은 보이지 않고 권수와 장수만 표시되어 있으며, 어미는 상하내향에 2엽화문이다. 판면의 상단부[天頭]에 두주(頭注)가 판각되어 있다.
이 목판은 연대가 오래되고, 특이한 이력을 겪은 강항의 행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판각 후 서원의 폐지 등 여러 이유로 이관이 빈번하였으나 보존이 잘되고 있으며, 인본(印本)도 국립중앙도서관에 1권밖에 없어 희소성이 큰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