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정자 1동으로, 원래 강진에서 영암으로 입향한 진주강씨문중에서 1618년(광해군 10)경에 건립한 것이다. 이후 1672년(현종 13) 전후하여 몇 차례 중수를 거쳐, 1866년(고종 3)에 중수되었으며, 2005년 7월 13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정자는 평면 구성이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앞면을 벽이 없는 마루로 하고 배면을 벽으로 막힌 실(室)로 처리하여 전후가 대칭적으로 되어 있다. 건축구조적인 면에 있어서 전후병렬식 겹집이다. 내부 가구구조는 쌍시옷자 형으로 짜여 있는데, 주심도리 · 중도리 · 종도리가 있는 5량의 기본가구 구조를 취하고 있으나 마루와 방을 경계 짓는 내진주열에 주심도리에 상응하는 별도의 구조재를 추가 설치하여 이 부재를 중심으로 대청마루 상부와 방의 상부구조가 각각 별도의 병렬조합식 3량 가구구조형식을 취하는 특이한 구조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본건물의 5량가구 구조의 중도리가 대청마루 상부의 종도리가 되어 3량가구 구조의 형식을 취하고, 인접한 방의 상부도 동일한 방식을 취하여 이중적 가구수법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예는 한국의 전통건축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예이다. 주요 구조재 가운데 기둥[柱]재 치목기법에서는 휜 원목을 곧게 펴서 사용하는 옛 기법을 볼 수 있고, 지붕 합각부 박공은 정한 곡률을 갖고 있는 두꺼운 목재를 인거톱질하여 동일한 곡률을 갖는 한 짝의 판재로 치목하여 좌우대칭되게 설치된 것으로 옛 수법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정자의 안쪽이 전부 실로 구성된 구조로 보아 단순한 정자로서의 기능보다는 서재와 학숙으로서의 기능도 함께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주변의 풍광이 뛰어난 곳에 위치하고 관련 시문이 다수 전하여 오고 있어 중요시되고 있다.
이 정자 건물의 이중적 가구수법의 예는 우리나라 전통건축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예로, 건조물 구조의 희귀성 등 건축사적 가치도 크다. 전면 우측협칸 상부에 ‘富春亭’ 현판이 걸려 있으며, 내부에는 ‘富春亭重修記(부춘정중수기, 1672)’ 등의 편액이 걸려있다. 2008년 해체 수리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