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로, 본관은 행주, 자는 대중(大中), 호는 노사이다. 성리학 6대가의 한 사람으로 말년에 장성군 진원면 고산리에 내려와 1878년(고종 15) 담대헌(澹對軒)이라는 정사를 짓고 많은 문인들과 함께 거처하며 학문을 논하였다.
1902년에 신안정사에서 간행되었던 책자가 따로 전하는 것이 없는 상황에서 『답문유편』의 목판이 완질로 전하고 있어 가치가 있다. 노사선생 전집 및 답문류편 목판은 담대헌을 1927년에 명칭 변경하여 기정진을 제향한 전라남도 장성군 소재 고산서원에 보관되어 있다.
문집의 목판은 653매이고, 『답문유편』의 목판은 209매이다. 목판의 전체 크기는 대략 가로 52㎝, 세로 21.5㎝이다. 변란은 사주단변이며, 반곽의 크기는 가로 16㎝, 세로 20.5㎝이다. 반면은 10행, 1행에 20자씩 배자되어 있다. 판심부에는 ‘蘆沙先生文集(노사선생문집)’이라는 서명이 보이고, 그 아래로 권수(卷數)와 장수(張數)가 표시되어 있다. 어미는 상하내향의 2엽화문 형식이다.
기정진의 저서는 1882년(고종 19)에 『노사집』 22권이 편집되고, 1890년(고종 27)에 『답문유편』 15권이 편집되어 뒤에 담대헌에서 목활자본으로 간행되었고, 1902년(고종 39) 경상남도 단성 신안정사(新安精舍)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문집은 권수에 목록이 있고, 권1·2는 시, 권3은 소(疏) · 사당(辭狀) · 책(策), 권4∼15는 서(書), 권16은 잡저, 권17∼20은 서(序), 권21∼23은 기(記), 권24는 발(跋), 권25는 잠(箴) · 축문 · 제문, 권26은 비(碑) · 묘지명, 권27은 묘표, 권28은 전(傳) · 행장 · 유사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답문유편』을 간행하였을 때 간행된 부록 2권이 있다.
『답문유편』의 권1∼3은 논도체(論道體)로, 권1 총론, 권2 성명(性命), 권3 심성정(心性情) · 형기신리(形氣神理) · 귀신명수(鬼神命數)이고, 권4·5는 논학(論學)으로, 권4 총론 · 지수(持守), 권5 지행(知行) · 출처이며, 권6∼9는 논경(論經)으로 권6 소학 · 대학, 권7 논어, 권8 맹자 · 중용, 권9 시(詩) · 서(書) · 역(易) · 춘추 · 예기이다. 권10·11은 논선유서(論先儒書)로, 주자(周子) · 정자(程子) · 장자(張子) · 주자(朱子)와 제유(諸儒), 권12∼14는 논예(論禮)로 통례(通禮) · 관례(冠禮) · 혼례 · 상례 · 제례 · 방례(邦禮), 권15는 논사(論史) · 훈문인(訓門人)으로 편성되어 있다. 문집 28권 중 12권을 차지하고 있는 서(書)의 주요 내용은 그가 문인들과 주고받은 성리학에 관한 질의 내용을 수록한 것이다.
문집 중의 서 · 잡저와 『답문유편』은 그의 철학사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잡저 가운데 「납량사의(納凉私議)」와 「외필(猥筆)」은 기정진의 이(理)에 대한 철학사상의 핵심적인 것이다.
이 목판은 연대는 늦으나 완본이 전하고, 간행처인 신안정사가 조선 후기에 경상도 일원에서 출판기능을 했던 곳이어서 당시의 판각 상황을 잘 알려주는 자료이다. 또한, 목판을 통하여 조선 후기 성리학의 대가인 노사기정진의 행적을 자세히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