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후(金麟厚, 1510~1560)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울산, 자는 후지(厚之), 호는 하서이다. 1540년(중종 35)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를 시작으로 홍문관의 박사와 부수찬, 옥과현감 등의 벼슬을 지냈다. 시문에 뛰어나 10여권의 문집을 남겼고, 천문 · 지리 · 의약 · 산수에도 정통하였다. 동국18현의 1인으로서 문묘에 모셔졌고, 장성의 필암서원과 곡성 옥과의 영귀서원(詠歸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정이다. 이 목판은 총 56매로, 1999년 7월 5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어,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필암서원에 소장되어 있다.
『초서 천자문』 목판의 전체적 크기는 가로 66㎝, 세로 25㎝이며, 1자의 크기가 가로 3㎝, 세로 4㎝ 정도의 초서대자(草書大字)로 되어 있다. 그밖에 특별한 판식은 없으며, 한행에 보통 5자씩 판각되어 있으나, 경우에 따라 4자에서 6자까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무이구곡』 목판의 전체 크기는 가로 54.5㎝, 세로 23.5㎝이다. 판식은 특별한 형식이 없이 판각되었으며, 『무이구곡』의 경우 판면에 8행으로, 1행에는 7자씩 배자하였다. 그밖에 목판은 행수는 같으나, 자수의 경우는 5자에서 6자씩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백련초해』 목판은 13판 25장으로, 1장에 4구씩 수록되어 있으나, 끝장인 장25에는 3연구만 수록되어 있어 모두 99연구(聯句)로 되어 있다. 전체 크기는 가로 54.5㎝, 세로 21㎝이며, 반곽의 크기는 가로 20㎝, 세로 15.5㎝이다. 변란은 사주단변으로 계선이 보이고 있다. 판면은 8행으로 1행에 14자씩 배자되어 있고, 판심부에는 서명이 없이 장차만 보이며, 어미는 상하내향의 3엽화문 어미 형식이다.
1610년(광해군 2)에 새긴 『초서 천자문』 18판과 『해자 무이구곡(武夷九谷)』 18판, 1568년(선조 1)에 새긴 『백련초해(百聯抄解)』 13판과 유묵 4판, 그리고 인종이 김인후에게 하사한 「묵죽도판」 3판을 1568년과 1770년(영조 46)에 새긴 것이다. 『백련초해』는 100가지 시구를 한글로 해석한 것이며, 「묵죽도판」은 인종이 세자시절인 1543년(중종 38) 여름에 춘궁의 교육을 맡고 있던 김인후에게 손수 그림을 그려 하사하였던 그림이다.
김인후의 초서체 글씨는 당시 호남 학자들 사이에 전형적인 모범 글씨가 된 것으로, 서예사적으로 독특한 위치에 있으며, 1568년(선조 1)에 새긴 『백련초해』의 어미는 전체적으로 장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임진왜란 이전의 어미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중국 안진경체(顔眞卿體)에 바탕한 김인후의 초서체 글씨는 당시 성리학자, 특히 호남 학자들 사이에 전형적인 모범 글씨가 되어 귀중한 자료가 되며, 『백련초해』는 한글판 가운데 연대가 가장 앞섰고, 인종의 판체인 「묵죽도판」은 판각의 변천을 알 수 있어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