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통도사 창녕포교당 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 석가여래좌상이다. 복장(腹藏)에서 발견된 「불상조성기」를 통해 1730년(영조 6)에 수화사(首畵師)인 하천(夏天), 부화사(副畵師)인 득찰(得察), 성찬(成粲) 등이 불상 조성에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금은 통도사 창녕포교당에 있지만 원래는 창녕 관룡사(觀龍寺)에 있었던 삼존상 가운데 1구임도 밝혀졌다.
오른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여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왼쪽 무릎 위에 올려놓아 석가여래임을 알 수 있다. 머리를 약간 숙여 내려다보는 자세를 취하였으며 넓은 어깨에 비해 무릎 너비는 좁은 편이다. 둥근 머리에는 끝이 뾰족한 소라형 나발(螺髮)을 촘촘히 나타냈으며 정상 계주(髻珠)와 중간 계주를 표현하였다. 방형의 얼굴에 볼에 살이 올라 부드러운 인상을 풍긴다. 착의는 오른쪽 어깨에 둥글게 대의가 걸쳐진 변형식 편단우견이며, 밋밋한 가슴에는 도톰한 연꽃잎 모양의 군의(裙衣)를 입었다. 전체적으로 어깨를 덮은 등간격의 주름이나 양 무릎 사이에 흘러내리는 군의자락의 일률적인 옷주름 등에서 도식적인 표현을 볼 수 있으며 이는 18세기라는 시대적 특징으로 이해된다.
불상의 착의법에서 전체적으로 도식적인 표현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 18세기의 시대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불상의 조성연대와 불상 조성에 참여한 화사들의 인적사항을 정확히 알 수 있고, 18세기의 돋보이는 석가여래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이 시기 불상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