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 학자인 고산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시문집과 연보 등의 목판이다. 윤선도는 20세에 승보시에 합격하여, 1616년(광해군 8) 성균관유생으로서 집권세력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함경도로 유배되었다. 벼슬을 버리고 내려온 뒤 완도 보길도(甫吉島)의 부용동(芙蓉洞)과 새로 찾은 해남 금쇄동에 여러 정자와 각을 지어놓고 시문을 지으며 생활하였다. 이 목판들은 1796년(정조 20)에 판각한 『고산유고』 268판 외에, 19세기 말에 판각한 『고산유사』 7판과 『고산선생연보』 30판 등 총 305판으로, 1999년 7월 5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어,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윤고산유물전시관에 소장되어 있다.
목판의 전체 크기는 대략 가로 49㎝, 세로 25㎝이다. 변란은 사주쌍변이며, 반곽의 크기는 가로 16㎝, 세로 21.5㎝이다. 반면은 10행이며, 1행에 21자씩 배자되어 있다. 판면의 왼쪽의 1행에 ‘孤山遺稿(고산유고)’라는 권두서명이, 가운데 판심부에는 상어미 위쪽에 역시 ‘孤山遺稿(고산유고)’라는 판심서명이 있다. 어미의 안쪽으로 권수와 장수가 있고, 하어미 아래로 편명(篇名)이 판각되어 있어 매우 특이한 모습이다. 어미는 상하내향 흑어미의 특이한 형식이다.
『고산유고』 권1에는 오칠언의 고시 · 율시 · 절구 · 회문 · 집고 등 250편이 실려 있고, 권2에는 「병진소(丙辰疏)」 등 16편의 소가 수록되어 있다. 권3의 상권에는 「국시소(國是疏)」 등 13편의 소와 예설 2편이, 하권에는 「상친정서(上親庭書)」를 비롯한 17편의 서가 있다. 권4에는 「답이현풍서(答李玄風書)」 등 100편의 서가 있고, 권5의 상권에는 「여갑산백서(與甲山伯書)」 등 21편의 서가, 하권에는 13편의 축문, 향사당조약 1편, 4편의 서(序), 2편의 설(說), 비명 5편, 잡저 5편, 산릉의(山陵議) 11편, 잡록 3편, 기 2편이 실려 있다. 권6은 별집으로, 상권에는 시 8편, 부 4편, 논 3편, 책 6편, 표전 4편이, 하권에는 ‘가사’라는 표제 아래 「산중신곡(山中新曲)」 · 「산중속신곡(山中續新曲)」 · 「고금영(古今詠)」 · 「증반금(贈伴琴)」 · 「초연곡(初筵曲)」 · 「파연곡(罷宴曲)」 ·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 「어부사여음(漁父詞餘音)」 · 「몽천요(夢天謠)」 · 「견회요(遣懷謠)」 · 「우후요(雨後謠)」 등 75수의 시조가 실려 있다.
이 목판들은 빠진 목판이 없으며, 유고 안에 한글 가사가 들어 있는 점, 그리고 조선 시조문학의 대가인 고산 윤선도의 행적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