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 영산전 후불탱·팔상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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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송광사 영산전 후불탱
순천 송광사 영산전 후불탱
회화
유물
국가유산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 영산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의 영산회상도와 팔상도. 국가유산 국보.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순천 송광사 영산회상도 및 팔상도(順天 松廣寺 靈山會上圖 및 八相圖)
분류
유물/불교회화/괘불화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국보(2024년 05월 27일 지정)
소재지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사안길 100 (송광면,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 영산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의 영산회상도와 팔상도. 국가유산 국보.
개설

비단바탕에 채색, 총9폭. 1725년작. 송광사 영산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불화로서, 석가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묘사한 영산회상을 그린 후불화(영산회상도)와 석가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묘사한 팔상도이다. 2003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2024년 5월 27일 국보로 승격되었다.

내용

영산회상도란 『법화경(法華經)』의 내용을 압축, 묘사한 것으로, 대웅전의 석가후불화로 봉안되거나 영산회상도를 봉안하기 위하여 특별히 지은 영산전의 후불화로 봉안된다. 영산전에 봉안되는 후불화는 영산전의 주불인 석가모니불의 후불화이면서도 다른 영산회상도 및 기타 전각의 석가후불도와는 다르게 그림 하단부에 설법을 듣는 청중들과 사리불까지 배치시킴으로써 『법화경』 내용에 충실하게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송광사 영산회상도는 구름으로 화면을 2분하여 상단에는 설법하는 석가모니와 10대 제자, 사천왕, 팔부중, 상단과 하단 사이에는 여섯 보살을 배치하였으며 하단에는 설법을 청하는 사리불과 범천, 제석천, 제왕들, 주악천녀, 청신남, 청신녀 등 『법화경』 서품(序品)에 의거하여 많은 권속을 묘사함으로서 영산회상을 장엄하고 실감나게 묘사하였다. 본존은 건장한 신체에 뾰족한 육계와 작은 이목구비를 갖추고 어깨를 살짝 덮은 홍색의 대의를 걸쳤으며, 사천왕이나 사리불, 재가신도 등은 가늘면서도 비수가 있는 선으로 공필화처럼 얼굴을 묘사하였는데 유연한 자세와 자연스러운 의습선 등이 돋보인다.

영산회상도의 좌우에 봉안된 팔상도는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코끼리를 타고 사바세계로 내려오는 장면인 도솔래의상(兜率來儀像), 석가모니가 룸비니공원에서 마야부인의 옆구리를 통해 출생하는 모습을 그린 비람강생상(毘藍降生像), 태자가 성문 밖의 중생들의 고통을 관찰하고 인생무상을 느끼는 장면의 사문유관상(四門遊觀像),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가하는 장면을 묘사한 유성출가상(踰城出家像), 설산(雪山)에서 신선들과 수행하는 모습을 그린 설산수도상(雪山修道像), 태자가 수행 중 온갖 유혹과 위협을 물리치는 수하항마상(樹下降魔像), 부처가 녹야원에서 최초로 설법하는 모습을 나타낸 녹원전법상(鹿苑說法像), 부처가 쌍림수 아래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표현한 쌍림열반상(雙林涅槃像) 등 8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작은 화면에 여러 장면을 묘사함으로써 복잡한 구도를 보여주는데 각 장면마다 붉은 화기란을 만들어 해당경문의 내용을 상세하게 적어놓아 장면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채색은 황토색 바탕에 붉은색과 녹색을 많이 사용하고 전반에 걸쳐 갈색 분위기의 무거운 느낌을 준다.

영산전의 후불도와 팔상도는 모두 18세기 지리산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의겸과 그 제자들에 의해 제작되었다. 영산회상도는 의겸이 수화승이 되어 회안(回眼), 양련(良蓮), 채인(彩仁), 일민(日敏), 굉척(宏陟), 해종(海宗), 치한(致閑), 민희(敏熙) 등이, 팔상도는 행종(幸宗), 향민(向敏), 회안 등 20여 명의 화승들이 함께 제작하였는데, 영산회상도를 제작한 화승 대부분이 팔상도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어 팔상도 역시 의겸의 총 지휘 아래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팔상도는 의겸이 1719년에 석가모니 및 전법제자(傳法弟子)들의 행적을 도상화한 중국 명대의 판본인 『석씨원류응화사적(釋氏源流應化事蹟)』의 여러 장면들을 응용하여 광흠(廣欽), 취안(就眼) 등과 함께 제작한 운흥사 팔상도의 도상을 기본으로 하여 제작되었다. 송광사 팔상도는 이후 쌍계사 팔상도(1728년), 선암사 팔상도(1780년) 등 의겸이 활동하던 호남 및 지리산 일대의 팔상도에 영향을 주었다.

참고문헌

「불화 속에 표현된 호남적 감성 - 의겸 불화의 도상과 양식을 중심으로」(김정희, 『호남학연구』 49,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2011)
「조선후기 팔상도의 특징」(박수연, 『불교미술사학』4, 통도사성보박물관·불교미술사학회, 2006)
「조선 후기 불화승 의겸에 관한 고찰」(안귀숙, 『한국의 불화(10)-월정사 본ㆍ말사편』, 성보문화재연구원, 1997)
「조선후기 불화승의 계보와 의겸비구에 관한 연구(하)」(안귀숙, 『미술사연구』 9, 미술사연구회, 1995)
「조선후기 불화승의 계보와 의겸비구에 관한 연구(상)」(안귀숙, 『미술사연구』8, 미술사연구회,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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