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서․화가 지식인들이 갖추어야 할 육예(六藝)의 중심 분야로 대두되면서 문인 사회에서 이를 겸비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으며 문인화가에 대한 최고의 찬사로 사용되었다. 문인화에서도 세 가지 요소가 융합된 상태를 최상의 경지로 여겼고, 시․서․화 일치사상과 함께 전개되었다.
조선 초의 서거정(徐居正)은 시․서․화 삼절의 문인화가를 이상적인 작가상으로 강조하여, “시와 서, 서와 화는 오묘함이 같은 것으로, 시는 성정에서 나온다. 서화는 마음과 손으로 이루어지는데, 만약 성정에 근원한다면 마음과 손이 호응하여 묘함을 기약하지 않아도 저절로 묘해진다, 따라서 옛 부터 시 잘하는 사람은 반드시 글씨를 잘 썼고, 글씨 잘 쓰는 사람은 반드시 그림을 잘 그렸으며, 당나라의 정건과 왕유(王維), 송의 소식(蘇軾), 원의 조맹부(趙孟頫)가 이에 해당한다(詩與書書與畵 同一妙也 詩出於性情 而書畵成於心手 若能源於性情 會之心手之間 其所得有 不期妙 而自妙者矣 是以古之善詩者 必善書 善書者 必善畵 自唐鄭廣文王摩詰 宋之蘇子瞻 元之趙孟頫 其人也)”고 하였다. 또한 서거정은 강희안도 이들처럼 ‘화시서삼법(畵詩書三法)’으로 ‘창생적 창작에 이르러(天機造到)’ 독보적인 경지에 오른 작가로 높게 평가하였다.
조선시대를 통해 이러한 삼절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 강희안(姜希顔)을 비롯하여, 윤두서(尹斗緖)와 허필(許佖), 이인상(李麟祥), 강세황(姜世晃), 신위(申緯), 김정희(金正喜), 전기(田琦) 등을 꼽을 수 있다. 근대의 문인화가로는 윤용구(尹用求)와 김용진(金容鎭)이 삼절로 지칭되었다.
시․서․화 겸비 풍조를 유발하여 문인들 사이에서 그림이 성행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으며 이들이 융합된 문인화풍을 심화시키기도 했으나, 문학과 글씨와의 미분화 상태를 오래 동안 지속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