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과 출신지는 영주(永州), 신분은 향리이며 가계는 자세하지 않다. 이종기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도망하여 개경(開京)에 왔는데, 용력(勇力)으로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1258년(고종 45) 3월 26일 대사성(大司成) 유경(柳璥)과 별장(別將) 김준(金俊)이 중심이 되어 최씨무인정권(崔氏武人政權)의 4대 집권자인 최의(崔竩)를 죽이고 왕정복고(王政復古)를 단행할 때 참여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후 대장군(大將軍)에 임명되었다.
1268년(원종 9) 12월 21일 김준이 임연(林衍)과 결탁한 원종의 측근에게 피살된 후, 일당(一黨)으로 몰려 임연의 무고(誣告)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처형에 임하여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마땅히 일찍 임연을 죽였을 것이다”라고 탄식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