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학록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하동
주요 관직
학록(學錄)
목차
정의
고려 후기에, 학록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가계 미상. 정성(鄭珹)은 학록(學錄) 벼슬을 거쳤으며 최항집권기에 고향 하동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하동(河東) 감무(監務) 노성(盧成)이 그 고을 사람 이규(李珪)·이창(李昌)과 결의 형제가 되어 합주부사(陜州副使) 설인검(薛仁儉), 남해현령(南海縣令) 정고(鄭皐), 급제 유여해(兪汝諧), 중 명취(明就) 등을 불러모아 문을 잠그고 “어진 선비는 가슴 치며 슬퍼하는 날이며, 영계 새끼들은 득의해서 노래 부르는 때로다”라는 시를 주고받으면서 국정을 비방하였다.

정성은 이러한 비방을 최항에게 무고하였다. 최항이 대노하여 노성·이규·이창을 목 베어 죽이고 설인검, 정고 등을 섬으로 유배보냈다. 이런 일로 인하여 그때의 사람들이 정성을 사람 잡아먹는 놈(食人者)이라고 손가락질했다고 한다. 정성의 무고사건은 최항정권에 대한 반감이 지방의 관리와 지식인층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음을 반증해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려무신정권시대 문인지식층의 현실대응』(김호동, 경인문화사, 2003)
『고려 무인정권과 지방사회』(신안식, 경인문화사, 2002)
『고려의 무인정권』(김당택, 국학자료원, 1999)
집필자
김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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