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하지 않다. 공민왕 때 금위제조관(禁衛提調官)·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찬성사(贊成事) 등을 역임하였다. 1366년(공민왕 15) 신돈(辛旽)에 의해 황상(黃裳)·이수산(李壽山)·한방신(韓方信) 등과 함께 국왕의 호종·숙위 임무를 맡은 금위(禁衛: 禁軍)의 제조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 신돈세력에 의해 유배되었다. 이때 안우상은 형제로 판단되는 안우경(安遇慶)이 경천흥(慶千興: 慶復興)·오인택(吳仁澤) 등과 함께 1367년(공민왕 16) 10월 신돈의 제거를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유배된 사건에 연루된 듯하다.
1371년 7월 신돈이 수원(水原)으로 유배되어 제거되면서 전 시중(侍中) 경천흥 및 이순(李珣: 李希泌)·윤승순(尹承順) 등과 함께 유배지에서 풀려나 돌아왔다. 그 이후 행적은 발견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