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하지 않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紅巾賊)의 제2차 침략 때 세운 전공을 인정받아 보리군(輔理君)에 책봉되었다. 이후 죄를 짓고 환속하여 고인기(高仁器)라 성명을 바꾸었다. 신돈(辛旽)이 집권하자 신돈세력으로 활동하면서 판소부감사(判少府監事)가 되었다. 1269년 11월에 신돈의 반역모의사건을 조정에 고발하였으나, 신돈이 반역모의사건을 감추고 석온을 다시 금강산(金剛山)으로 내쫓았다. 1371년 7월 신돈이 모반사건으로 제거되자 기현(奇顯)·최사원(崔思遠)·정구한(鄭龜漢) 등과 함께 신돈세력으로 지목되어 죽임을 당하였다.